안희두 종묘 탐방기 1 "전하, 종묘사직을 보존하시옵소서

정흥교 | 기사입력 2020/04/29 [16:06]

안희두 종묘 탐방기 1 "전하, 종묘사직을 보존하시옵소서

정흥교 | 입력 : 2020/04/29 [16:06]

 


[수원인터넷뉴스]

"전하, 종묘사직을 보존하시옵소서

 

종묘사직과 사직종묘는

앞뒤가 바뀌었다

시소를 한참 타다

저울로 달고 싶다

 

그럴까?

경복궁 근정전 = 5×5

든든한 25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보면 신하들이 왕에게 우르르 몰려가 협박하듯 떼창하던 소리다. 내가 종묘에 처음으로 간 것이 201514일 새해 벽두인데, 그때 종묘를 왜 찾아갔는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종묘는 유학을 통치 기반으로 하여 건국한 조선왕조가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봉행하던 곳이다.

 

 

 

종묘는 건물과 더불어 제례 및 제례악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종묘는 1995129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2001518일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종묘제례는 5월 첫째 일요일과 11월 첫째 토요일에 거행한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봄 종묘대제가 51년 만에 취소되었다(413일자 한겨레신문). 또한 종묘의 정전(正殿)30여 년 만에 보수공사가 이르면 올해 5월부터 시작되고 완료 시점은 2022년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연장될 수도 있단다. 관람을 제한하지는 않는다지만 탐방을 미룰 이유 또한 없다.

 

 1 외대문 2 정전 남신문 3 정전 4 영년전 5 향대청 일원 6 재궁 일원 7 전사청 일원 8 정전 악공청 9 영녕정 악공청


올해 38일부터 11일까지 대만을 여행하려다 코로나19로 취소하고 백령도로 바꾸었는데, 이것 또한 불안하고 정부의 여행 자제 권고에 따라 취소하였다. 국내 여행이 자유로워지면 서울 궁궐을 탐방하기 위해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집에 갇혀 생활하다 330일 정기진료를 받기 위해 서울행 M버스를 탔다. 50여일 만이다. 내 자신이 건강 약자이기에 고향 친구의 딸 결혼식과 문단 회원의 부친 장례식에도 전화로 인사만 하고 송금만 했다. 지인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지만, 가족의 거센 반발로 갈 수가 없었다.

문인협회 회장의 이취임식조차 당일 몸 상태가 갑자기 좋지 않아 가까운 수원인데도 참석하지 못했다. 올해 여섯 번째 찾아간 영화관도 212일로 멈추었다.

 

어느 날 아내가 놀라 뛰어왔다. 밴드에 보니 오늘 119구급차가 우리 아파트에 왔는데, 모든 대원들이 방역복을 입고 온 모양이다. 하필이면 같은 라인이란다. 운동하기 위해 아침과 저녁 한 번씩 나갔다 왔는데 혹시 감염되었나? 마스크를 구입하러 나갔다 온 적도 있는데, 혹시 몇 시에 왔다갔을까? 관리소에 물어봐도 개인정보라 말할 수 없단다. 혹시 주변에 소독을 했느냐는 질문에 없다는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지난해 1212일 중국 우한시에서 원인불명의 폐렴(코로나19) 환자가 처음으로 발생했다. 한국은 120일 국내 첫환자가 확인된 후 229일에는 하루 확진자 수가 909명이나 발생하여 누적확진자수가 2,931명이 되었고,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다. 312일에는 WHO에서 전염병 최고 단계인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고, 다음날 미국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코로나19가 발견된 후 서너 달 만에 전세계는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하거나 상상하지 못한 대혼란에 빠졌다.

 

하필이면 당시 여행기를 발표하던 이탈리아 지역은 전국 이동제한 및 국가 기간산업 업종을 제외한 비필수 사업장 운영을 전면 금지했고, 학교는 대부분 휴교령, 국경폐쇄 등 강력한 행정명령에도 확진자가 급증했고, 327일 하루 919명이 사망했다. 여행기 중단을 여러번 고심하다가 어렵게 마무리를 했다.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상당 기간, 어쩌면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나마 한국은 의료진의 헌신과 높은 기술, 국민의 단합으로 절정기를 거쳐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완화된 거리두기로 바꾸었고, 5월에는 생활 속 거리두기로 극복해나가려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한 국가가 아닌 전세계와 연결되어 있기에 해외여행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 같다. 우선 국내를 돌며 여행기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 순서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바뀔 것이다. A1을 이야기하다 B3로 건너갔다가 A2 등으로 여행기가 준비되는 대로 뒤엉켜지더라도 독자님들의 이해를 당부드린다.  

 

 

 

49일 코로나19 종식과 국난극복을 기원하며 마스크 착용하고 종묘와 사직단에 다녀왔다. 단군성전에도 가서 인사를 한다고 계획하고 갔는데, 유인물을 들고도 깜빡했다. 414일에는 창덕궁과 후원, 창경궁을 다녀왔다. 424일 칠궁과 경복궁에 들렸다가 다시 사직공원을 찾아갔다. 사직단을 빙 둘러 발굴작업을 하고 있기에 꼼꼼히 살펴보지 못한 것 같았다. 특히 28일부터 코로나19로 궁궐 안내 해설이 중지되어 시간제 자유관람만 진행되는데, 평소보다 출입이 금지된 곳이 늘어났다.

 

단군성전에 인사드리고 점심을 먹고 나니 광화문이 생각났다. 한글을 만든 집현전이 있었던 수정전을 보려고 다시 들어갔다가 영추문으로 나왔기 때문에 광화문을 사진기에 담을 생각도 안했다. 또 있다. 궁궐을 판단하는 동십지각도 있다. 재구조화한다는 광화문 광장도 바뀌기 전에 걸어서 덕수궁쪽으로 가려다 무심코 커피 전문점으로 발길이 돌렸다.

 

 

 

종묘는 조선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지 두 달 후인 태조 3(1394) 12월에 중국의 유교 제도를 본떠 착공, 13959월에 완공하였는데, 신실 7, 좌우익실 각각 2칸 규모로 정전을 세웠다. 곧이어 개성으로부터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를 추존왕으로 신주를 모셨다. 세종 때 정종이 죽자 모셔둘 정전이 없어 중국 송나라 제도를 따라 세종 3(1421) 4실의 영녕전(永寧殿)을 세워 4대 추존왕의 신위를 옮겨 모셨다.

 

선조25(1592)에 임진왜란으로 정전과 영녕전이 모두 소실되었다. 1604(선조 37)부터 중건이 논의되기 시작하였고, 선조 41년 복구공사를 시작하여 광해군이 즉위하던 16085월 중건되었다.

 

중건(重建)한 정전은 11, 영녕전은 10칸 규모로 다시 세웠다. 그리고 헌종 2(1836)까지 필요에 따라 계속 증축하였다. 그리하여 현재 정전에는 19실에 19위의 왕과 30위의 왕후의 신주를 모셔놓았다.(49) 영녕전에는 정전에서 조천된 왕과 왕비를 모셨다. 16실에 15위의 왕과 17위의 왕후, 그리고 의민황태자(懿愍皇太子 영친왕)의 신주를 16실에 모셔 놓았다.(34) 그리고 정전 뜰앞에 있는 공신당에는 정전에 계신 왕들의 공신 83위가 모셔져 있다.

 

 

  

태조가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궁궐과 종묘를 지을 때 사직단도 함께 조성되었다. 임금이 있는 경복궁을 기준으로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단을 세운다는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에 따라 배치한 것이다. 사직단은 종묘와 함께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유교 사회에선 왕이 나라를 세우고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종묘와 사직(社稷)을 세워 조상의 은덕에 보답하며 경천애지사상(敬天愛地思想)을 만백성에게 널리 알리고, 천지 신명에게 백성들의 생업인 농사가 잘되게 해 달라고 제사를 올렸다. 종묘와 더불어 나라에 큰일이 있거나 가뭄에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 풍년을 비는 기곡제 등의 제사도 행해졌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