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두 종묘 탐방기 2 공신도 잡신도 한 울타리 조선이다

정흥교 | 기사입력 2020/05/06 [23:16]

안희두 종묘 탐방기 2 공신도 잡신도 한 울타리 조선이다

정흥교 | 입력 : 2020/05/06 [23:16]

 


[수원인터넷뉴스] 종묘는 코로나19로 인해 29일부터 시간제 관람을 자유관람으로 바꿨다. 해설사가 없으니 행동은 자유롭지만, 안내판을 일일이 읽기도 어렵고, 읽었다고 이해가 되는 것도 아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종묘관리소 홈페이지를 참고로 종묘를 탐방해 보자.

 

종묘 홈페이지에서 <종묘이야기/종묘미리보기>를 클릭하면 건축물 사진과 함께 설명이 나온다. 앞의 탐방기 1에서 소개한 안내지도는 입구에 비치된 팸플릿인데, 아쉽게도 홈페이지와 건물의 번호 및 개수가 다르다

 

 

      

오늘은 종묘에서 가장 중요한 정전과 영녕전을 살펴보자.

 

A. 정전()

정전은 종묘의 랜드마크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조선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지 두 달 후인 태조 3(1394) 12월에 유교 제도를 본떠 착공하여 다음 해 9월에 신실 7, 좌우익실이 각각 2칸 규모로 정전을 완공했다. 그리고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를 추존왕으로 신주를 모셨다. 세종 3(1421)4실의 영녕전(永寧殿)을 세워 4대 추존왕의 신위를 정전에서 영녕전으로 옮겨 모셨다.

    

 ▲정전 앞마당 끝에는 3단의 월대가 있다.

 

선조 25(1592)에 임진왜란으로 정전과 영녕전이 모두 소실되었고, 1604(선조 37) 중건이 논의되어 16085월 중건되었다. 그리고 헌종 2(1836)까지 필요에 따라 계속 증축하였다. 현재 정전은 칸마다 신위를 모신 신실인 감실 열아홉 칸, 신실 양옆으로 각각 두 칸의 협실, 그리고 협실 양 끝에서 직각으로 앞으로 꺾여 나와 마치 신실을 좌·우에서 보위하는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동·서월랑 다섯 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전의 봉안도


정전에는 19실에 19위의 왕과 30위의 왕후의 신주를 모셔놓았다(49). 서쪽 첫 번째 칸에 태조의 신위가 모셔져 있고, 동쪽으로 차례로 태종(3), 세종(4), 세조(7), 성종(9), 중종(11), 선조(14), 인조(16), 효종(17), 현종(18), 숙종(19), 영조(21), 정조(22), 순조(23), 문조(추존), 헌종(24), 철종(25), 고종(26), 순종(27)과 각 왕의 비()를 합쳐 모두 49(19, 왕비 30)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특이하게 문조는 순조의 세자이자 헌종의 아버지이며 고종의 양부인데, 대한제국에서 황제로 추존되었다. 종묘는 당시 재위하던 왕의 4대조(고조, 증조, 조부, )와 조선시대 역대 왕 가운데 공덕이 있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하는 곳이 되었다.

    

 ▲정전은 4단의 월대가 떠받들고 있다.

 

 신이 다니는 남문 또는 남신문


남문인 신문에서 보면 정전은 동서 109m, 남북 69m나 되는 월대가 넓게 펼쳐있고, 가운데에는 신실로 통하는 긴 신로가 남북으로 나 있으며, 그 북쪽 끝에 상월대와 기단이 설치되어있다. 종묘 건축이 다른 건물과 다른 점은 건물 내부에 모실 신위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몇 차례에 걸쳐 건물을 옆으로 증축하여 길게 늘인 점에 있다.

 

 정전 남신문 앞 계단에 앉아

 

중국에서 태어난 유교 경전 따랐지만

 

칠사당도 모시고 공신당도 한 울타리

오백 년 침묵의 함성으로 세계사에 우뚝 섰네

 

이 건물은 칸마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매우 단순한 구조이지만, 19칸이 옆으로 길게 이어져 우리나라 단일 건물로는 101m로 가장 긴 건물이란다. 정전 앞에는 넓은 월대를 두었고 사방으로 담장을 둘렀다. 거친 월대 바닥과 그 위로 육중한 지붕이 떠 있는 모습은 숭고하고 고전적인 건축미의 극치를 이룬다고 말한다(종묘 안내팸플릿에서).

 

정전에는 3개의 문이 있는데, 남쪽 신문(神門)으로 혼령이, 동문(東門)으로 임금을 비롯한 제관들이, 서문(西門)으로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공과 춤을 추는 사람들이 출입했단다.

    

 

 

B. 정전 월대 아래 두 건물

. 공신당()

공신당은 정전 울타리 안에 있는데, 조선왕조 역대 공신들의 위패(83)를 모신 사당이다. 정전 반대편 월대 아래에 있다. 창건 때는 5칸에 불과하였으나 나중에 9칸으로 늘렸다가 지금은 16칸의 긴 건물로 되었다. 왕의 신실과 한 울타리 안에 있고, 16칸이라는 보기 드문 긴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정전에 와서도 눈여겨보지 않는 건물이란다.

    

 공신당/ 정면에 기둥이 17개이므로 16칸이다. 그리고 측면에 기둥이 앞뒤 2개이므로 1칸이다. 따라서 16×1 = 16칸 건물이 된다.

  

공신당에 배향된 영령들 한 분 한 분

이름을 외쳐봐도 그림은 몇 장이다

당대엔 당당한 공적도 짧아진 바지랑대

 

종묘에 배향된 역대 국왕별로 선정된 공신

태조 : 문충공 조준, 의안대군 이화, 충경공 남재, 흥안군 이제, 양열공 이지란, 강무공 남은, 한산군 충정공 조인옥

정종 : 익안대군 이방의

태종 : 문충공 하륜, 한산부원군 충무공 조영무, 익경공 정탁, 완산부원군 이천우, 계림군 이래

세종 : 익성공 황희, 정열공 최윤덕, 문경공 허조, 문희공 신개, 문정공 이수(봉산이씨 시조), 양영대군 이제, 효령대군 이보

문종 : 문효공 하연

세조 : 익평군 권람, 양절공 한확, 충성공 한명회

예종 : 문헌공 박원형

성종 : 문충공 신숙주, 충정공 정창손, 충정공 홍응

중종 : 무열공 박원종, 충정공 성희안, 문성공 유순정, 문익공 정광필

인종 : 문희공 홍언필, 찬성 김안국

명종 : 충혜공 심연원, 문언공 이언적

선조 : 충정공 이준경, 문순공 이황, 문성공 이이

인조 : 문충공 이원익, 문정공 신흠, 문충공 김류, 충정공 이귀, 충익공 신경진, 충정공 이서, 정효공 이보

효종 : 문정공 김상헌, 문경공 김집, 문정공 송시열, 충경공 이준, 문충공 민정중, 문정공 민유중

현종 : 익헌공 정태화, 충숙공 김좌명, 문충공 김수환, 문충공 김만기

숙종 : 문충공 남구만, 문순공 박세채, 충정공 윤지완, 문정공 최석정, 문충공 김석주, 문료공 김만중

경종 : 혜정공 이수, 병조판서 민진효

영조 : 충헌공 김창집, 충정공 최규서, 문충공 민진원, 문충공 조문명, 충정공 김재로

장조 : 문충공 이종성. 정헌공 민백상

정조 : 문충공 김종수, 충문공 유언호, 충문공 김조순

순조 : 충정공 이시수, 문충공 김재찬, 문정공 김이교, 문충공 조득영, 충정공 이구, 충경공 조만영

문조 : 문헌공 남공철, 문헌공 김로, 문숙공 조병구

헌종 : 문익공 이상황, 문충공 조인영

철종 : 충간공 이헌구, 효희공 이희, 정문공 이수근

고종 : 문익공 박규수, 문경공 신응조, 문정공 이돈우, 충정공 민영환

순종 : 문헌공 송근수, 효문공 서정순

 

 공신 봉안도


. 칠사당(七祀堂 )

종묘 창건 때부터 정전 울타리 안에 세웠던 토속 신앙과 유교 사상이 합쳐진 사당이다. 칠사당은 운명을 주관하는 <사명>, 집의 문을 관할하는 <사호>, 아궁이를 관할하는 <사조>, 지붕을 관할하는 <중류>, 도성의 문을 지키는 <국문>, 형법과 사형을 담당하는 <공려>, 국왕의 여행길을 지켜주는 <국행>을 모셨다. 봄에는 사명과 사호, 여름에는 사조, 가을에는 국문과 공려, 겨울에는 국행과 중류를 모셨다. 평상시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잡신을 잘 다스림으로써 왕실의 번영과 기원을 위한 것이란다.

    

 ▲칠사당은 정면이 3, 측면이 1칸이므로 3칸 건물이다.


C. 영녕전(永寧殿 )

'영녕'은 임금의 역대 조상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다는 뜻으로 영녕전은 '조묘'인 별묘라고도 한다. 영녕전은 신실 하나하나의 구성은 정전과 크게 다름이 없지만 크기가 정전보다 약간 작고 전체 건물 규모도 정전보다 작다. 전체적으로 종묘 정전보다는 작지만, 건축 공간 자체의 구성은 친근감 있는 장인들의 솜씨가 이곳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영녕전 정면

 

영녕전에는 마당 월대가 2단이고 건물 밑에 월대는 3단이다. 그리고 중앙 부분의 4칸은 다른 바닥보다 약간 높다. 정전은 마당 월대가 3단이고 건물 밑에 월대가 4단이었다. 좌우 익실 앞으로 동·서월랑이 뻗어 나와 ㄷ자 형태를 이루고 있고, 박석을 덮은 상·하월대가 울타리를 가득 메우는 점도 정전과 같다. 전체적으로 영녕전은 정전보다는 작지만, 건축 공간 자체의 공간 구성은 정전 못지않다.

 

 


영녕전에는 누굴 모셨을까? 질문을 갖게 되는데, 앞의 정전에서 조천된 7명의 왕으로 정종(2), 문종(5), 단종(6), 예종(8), 인종(12), 명종(13), 경종(20)이 있다. 그리고 건국할 때 태조가 4대 선조를 추존왕으로 정전에 모셨는데, 세종 3(1421) 영녕전을 세우면서 가운데 4개의 방을 양쪽 옆에 딸린 방들보다 높게 꾸몄다. 그리고 각 방에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왕비들의 신주를 옮겨와 모시고 있다.

 

 


조선왕조가 50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지속하면서 정전과 영녕전 내부에 모실 신주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정전을 확대할 때 영녕전도 중건했다. 현재는 중앙 4, 익실 각 6칸 등 모두 16칸의 규모를 갖게 되었다. 지금은 정전과 영녕전을 합하여 종묘라고 부르지만, 종묘는 원래 정전을 말하며, 영녕전은 별묘였다.

 

 영녕전 봉안도


정전에서 조천되거나

아들 잘 둬 추존된 왕

월대도 기단도 낮은음자리

수수의 극치란다

까치발 동동거린다

설레발친다 괜스레

 

서쪽 5번째 방부터 16번째 방까지 각각 정종(2), 문종(5), 단종(6), 덕종(9대 성종의 아버지), 예종(8), 인종(12), 명종(13), 원종(16대 인조의 아버지), 경종(20), 진종(영조의 맏아들로 효장세자, 정조의 양아버지), 장조(사도세자로 정조의 아버지)와 각 왕의 (), 그리고 의민황태자(영친왕)와 태자비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16칸에 15분의 왕과 17분의 왕후 및 조선 마지막 황태자인 고종의 아들 이은(李垠)과 부인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사도세자는 후손들에 의해 장조로 추존되어 영녕전에 신주를 모셨다. 종묘에는 한때 폐위되었다가 숙종 때 복위된 단종의 신위는 영녕전에 모셔져 있지만, 폐위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위는 정전과 영녕전 모두에서 제외되었다.

 

안희두 종묘 탐방기 3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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