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두 종묘 탐방기 3 종묘 안에 공민왕은 신의 한 수 였다

정흥교 | 기사입력 2020/05/13 [08:24]

안희두 종묘 탐방기 3 종묘 안에 공민왕은 신의 한 수 였다

정흥교 | 입력 : 2020/05/13 [08:24]

 


[수원인터넷뉴스] 앞의 종묘 탐방기 2에서 정전과 영녕전을 주로 살펴보았다. 정전과 영녕전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정전에는 업적이 많은 임금의 신주는 계속 모시고, 재위 기간이 짧거나 업적이 미미한 임금의 신주는 영녕전에서 모신다는 점이다. 지금은 같은 날 같이 모시지만, 예전엔 영녕전 제례는 정전보다 한 단계 낮게 행해졌다고 한다. 건축 규모도 정전의 건축 영역이 영녕전보다 넓다. 또 건축 형식면에서 영녕전은 4대조를 모신 가운데 부분만 정전 규모이고 양옆의 실은 정전보다 규모가 작단다. 한 나라에서 모신 왕을 따라 공신당을 나누어도 이상하지만 함께 정전에서만 모셨고, 칠사당도 정전에서만 모신 게 천만다행이다. 무엇보다 벽체와 기둥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서 다르단다. 정전에서는 기둥을 벽 속에 숨긴 데 반하여, 영녕전에서는 원기둥을 드러내서 벽면을 나누고 있다. 배흘림기둥과 민흘림기둥도 영녕전과 정전이 서로 다른 점이란다. 눈여겨 보긴 보았지만 글쎄 자신은 없다.

 

오늘은 그 밖의 풍경을 살펴보자. 우선 종묘의 출입구부터 살펴보자.

 

D. 종묘의 정문인 외대문 주변

 

. 외대문 밖 풍경

종묘 정문인 외대문(外大門 ) 밖에 하마비(下馬碑)가 도로(종로 지하철 1호선) 가까이에 있으며, 어정(御井)과 해시계 양부일구의 받침대도 있다. 1986년에 세운 월남 이상재 선생님 동상과 이동녕 주석 집터도 있다.

 

 

종묘 밖 하마비(下馬碑)에서 펼쳐진 광장 끝부분에 정문인 외대문이 보인다

 

 하마비에서 외대문 방향으로 대로 오른쪽 중간쯤 언덕에 있다. 지름이 1m, 깊이가 8m 내외란다. 역대 왕들이 종묘를 왕래할 때 마셨다고 종묘 어정이라 불렀단다.


. 종묘의 정문인 외대문

 

 종묘 밖에서 바라본 종묘의 정문인 외대문()


종묘의 외대문에는 3개의 문이 있는데, 그중 가운데 중앙문은 신주를 모실 때만 열고 평소에는 닫아두는데, 외대문 위쪽은 영혼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창살로 꾸몄다.

 

코로나가 전세계를 들쑤시며 날뛰어도

똑 부러진 백신 하나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궁궐은 굳게 닫혀도 종묘엔 바람 숭숭

 

 종묘 안쪽에서 바라본 정문인 외대문

 

. 외대문 안쪽 풍경

외대문에서 시작되어 정전까지 이어져 있는 세 줄 돌길은 가운데 중앙길이 혼령이 다니는 길(神路)이고 우측은 왕이, 좌측은 세자가, 흙길은 대신들이 걸었던 길이라고 한다. 신위를 운반할 일이 있다면 신로를 이용해야 한다. , 축문, 폐백과 제사 예물도 신로를 따라 오갈 수 있다. 그래서 신로는 신향로(神香路)라고 부르기도 한다. 거친 돌을 사용한 이유는 햇빛에 반사되어 혼령들의 눈이 부실까 봐 그랬단다.

 

 돌길 가운데는 혼령이 다니는 길로 양옆보다 조금 높다.


. 종묘 안에 연못인 지당(池塘)

 

우리는 결단코 빼앗은 게 아니라

이렇게 모셔가며 단군부터 한민족

지당은 天圓地方 한 울타리

산 물고기 없단다

 

 연못을 청소하고 있다.

 

 

 

 지당 안의 섬에 춤추는 향나무


종묘 안에는 연못인 지당이 3개가 있는데, 연못 모양은 모두 사각형이고 가운데에는 둥근 섬이 있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짐) 사상을 나타낸다. 궁궐의 연못에는 정자가 있는데, 종묘의 주인공은 혼령이기에 정자가 없단다. 또한 직접 확인은 못해봤지만, 종묘는 죽은 왕들의 혼백을 모신 곳이라 살아있는 물고기가 없단다.

 

. 향대청() 일원

 

 우측이 망묘루, 오른쪽 위가 공민왕 신당, 플러그처럼 11자형 건물이 향대청이다.


망묘루는 평소에는 종묘를 관리하는 관원들이 업무를 보는 곳이다. 왕이 종묘에 도착하면 잠시 쉬면서 선왕(先王)의 공덕을 기리고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망묘루(望廟樓 )


공민왕 신당() 고려 31대 공민왕(恭愍王 1330~1374, 재위 1351-1374)을 위하여 종묘 창건 시에 건립된 신당이란다. 공민왕 신당은 별당으로 신당 내부에는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가 같이 있는 영정(影幀, 세로 81.5, 가로 65.5)과 공민왕이 그렸을 거라는 준마도(駿馬圖) 3점이 봉안되어 있다. 원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단다.  

 

 공민왕 신당


공민왕은 밖으로 원나라를 물리쳐 나라의 주권과 영토를 되찾았고, 안으로 개혁정치를 펼쳤으며, 개인적으로는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임금이었다. 조선의 태조(太祖) 이성계에게 왕조를 빼앗긴 공민왕의 신당이 조선왕조 최고 사당인 종묘에 건국에서부터 지금까지 함께 공존하고 있다. 이유는 모르지만 참으로 웃긴 일이다.

 

공민왕과 공주의 묘는 개성에 있다. 고려를 끝내고 조선을 세운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런 조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설에 따르면 태조가 종묘를 건설할 때에 공민왕의 초상화(영정)가 마당에 날아왔고, 장시간에 걸친 조정회의에서 그 영정을 봉안하는 사당을 건립하게 되었단다.

 

 공민왕 신당 출입문은 종묘에서도 특이하다.


종묘의 한 귀퉁이 공민왕의 신당에서

, 세웠을까?

, 모셨을까?

군말 없이 오백 년을

물음표 남발하다가 깨달은 신의 한 수

 

향대청()은 종묘에 사용하는 향축폐(香祝幣) 등 제사 예물을 보관하고, 제향(祭享)에 나갈 제관들이 대기하던 곳으로, 남북으로 긴 뜰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향대청의 전시자료

 

 향대청의 전시자료

 

. 재궁() 일원

 

 재궁 일원 안내도, 위에서부터 어목욕청, 어재실, 세자제실


정전 동남쪽에 있는 재궁은 국왕이 제사를 준비하던 곳이다. 재궁 북쪽에는 임금이 머무는 어재실, 동쪽에는 세자가 머물던 세자재실(世子齋室)이 있고, 서쪽에는 어목욕청(왕이 목욕하는 건물)이 있다

 

 어재실 외관

 

 어재실 왕의 모습

 

 어재실

 

 세자재실


. 전사청() 일원

 

 

  

정전 동문 옆의 수복방(守僕房 )은 종묘를 지키는 관원들이 사용하던 곳이며, 그 앞에 전사청()에서 만든 제사 음식을 제상 위에 차리기 전에 검사하던 찬막단(饌幕壇)과 재물인 소, , 돼지를 검사하던 성생위(省牲位)가 있고, 전사청 동쪽에는 제사용 우물인 제정(齊井 )이 있다.

 

 좌측이 정전 동문이며 오른쪽이 정전 수복방인데, 4칸 중 한 칸이 정전으로 가는 문이다. 누가 봐도 동문과 다름없지만, 원칙을 지키면서 음식을 차리는데 얼마나 요긴하게 사용하였을까? 손뼉을 쳤다.


전사청()은 종묘 제사에 사용하는 제수의 진찬 준비를 하던 곳으로, 뜰을 가운데 두고 그 주위로 건물을 ㅁ자형으로 배치하였다. 주실은 정면 7, 측면 2칸이고 옆에 온돌과 마루방을 들여 행각으로 꾸몄다

 

 전사청 안쪽

 

 전사청 밖에서 본 외관 모습


제정()은 향제(享祭)에 사용되는 우물을 말하는데 정전 전사청(典祀廳) 동쪽에 있다.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찬 게 특이하다고 한다. 4면을 담장으로 둘렀고, 남쪽에 우진각지붕의 일각문(一脚門)이 있다.  

 

 담장 안에 제정

 

. 악공청

종묘제례시 연주하는 악사들이 대기하는 건물이다. 정면 6,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소박하고 간결한 건축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정전과 영전 악공청이 각각 있는데, 위에 건물은 정전 악공청이다.

 

 종묘를 감싸고 있는 뒷길


이제 종묘의 뒷길에 올라서니 공사중인데 가림막이 둘러져 있다. 가림막에 전시된 작품을 사진기에 담아 보았다

 

 

 

 

 

 

 

 

 

 

 

 

 

 


안희두 종묘 탐방기 1에서도 말했지만, 종묘는 1995129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2001518일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매년 5월 첫째 일요일과 11월 첫째 토요일에 거행하는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필자가 듣고 보지 못했기에 종묘에 관한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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