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두 경복궁 탐방기 8 자경전과 교태전, 조선 최고의 굴뚝

정흥교 | 기사입력 2020/09/03 [08:47]

안희두 경복궁 탐방기 8 자경전과 교태전, 조선 최고의 굴뚝

정흥교 | 입력 : 2020/09/03 [08:47]

 


Q-1 조대비

 

앞에서 언급했듯이 <경복궁 탐방기 6>은 본래의 경복궁을 복원한 게 아니라 고종의 세상이다. 반면 자경전은 고종의 양어머니인 조대비의 세상이다. 조대비는 조선 오백 년 역사상 가장 큰 일을 한 여성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바로 흥선대원군에게 권력을 주고 개혁정치를 하게 한 신정왕후인 조대비이다.

조대비(익종 왕비·신정왕후)는 풍양조씨로 효명세자의 세자빈이다. 효명세자가 스물두 살에 요절해서 평생을 과부로 산다. 아들인 헌종이 왕위에 올랐지만, 안동김씨 출신이자 시어머니인 순조비 순원왕후(純元王后)가 맡는다. 헌종도 후사 없이 요절하자 순원왕후는 강화도령 이원범(철종)을 왕으로 지명해서 안동김씨 세상을 이어간다. 조대비는 그 기간 동안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

 

 왕비를 비롯해 궁중 여성들의 세계엔 꽃담으로 구별하였다.

 

 협경당(協慶堂)


철종 8년 순원왕후가 죽자 조대비는 대왕대비가 되었다. 철종이 재위 13년 만에 후사(後嗣)도 없이 승하하자 조대비는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로서 왕실의 권한을 단숨에 잡았다. 조대비는 옥새를 챙겨 일사천리로 왕위 계승을 공표했다. 고종이 어린 나이라 조대비 자신이 섭정하거나 풍양조씨 세도정치를 할 수도 있었지만, 고종의 생부인 흥선군에게 모든 실권을 주었다.  

 

 자경전(慈慶殿)과 청연루(淸燕樓)

 

Q-2 흥선대원군

 

대원군이란 호칭은 왕이 형제나 자손 등 후사가 없이 죽고 종친 중에서 왕위를 계승하는 경우, 새로운 왕의 생부에게 주던 존호(尊號). 조선시대에 대원군은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 인조반정으로 왕이 된 인조의 아버지정원대원군, 1849년 헌종이 후사가 없이 죽고 철종이 왕이 되어 전계대원군으로 추존됐다. 그리고 1863(철종 14) 철종이 후사가 없이 죽었는데 대왕대비인 조씨는 흥선군 하응(興宣君 昰應)2남을 양아들로 삼아 왕으로 선정하였다. 고종이 즉위하자 생부인 하응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에 봉하여졌고 이로써 조선의 대원군은 모두 4명이 되었다.

 

철종이 왕으로 있었던 14년은 흥선군에겐 고난의 시기였다. 안동김씨 세력은 이씨 왕실 종친 중 좀 똑똑하다 싶으면 역적으로 몰아 죽이거나 유배를 보냈다. 흥선군은 해어진 도포, 떨어진 갓, 투전판이나 상갓집을 들락거리며 왈패들과 어울렸다. 한편 추사 김정희에게 학문과 미술을 배워 난초 그림에 뛰어났고, 생계유지를 핑계 삼아 그림을 그려 내다 팔았다. 파락호 행세로 안동김씨 눈길에서 벗어나면서도 다양한 인간관계를 통해 세력을 넓혀가면서 불확실한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다.

 

 

자경전의 정문인 만세문(萬歲門)으로 들여다본 자경전, 만세란 긴 시간을 뜻하며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이 오랫동안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이 문을 통해 자경전은 물론이고 청연루나 협경당으로 갈 수 있다.


표면상으로는 조대비가 수렴청정(垂簾聽政)하지만, 실질적으로 흥선대원군이 모든 정책의 결정권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흥선대원군은 화답하며 효명세자가 이루지 못한 꿈 - 서원철폐, 호포법 실시, 경복궁 중건, 삼정문란 개혁 등 - 10년 동안 하나하나씩 실현해 나갔다.

 

1868(고종 5)년 경복궁 재건 당시 흥선대원군이 가장 공들여 지은 건물은 바로 자경전(慈慶殿)이다. 왕의 공간인 사정전이나 강녕전, 중전의 교태전보다 더 크다. 12살짜리 자기 아들 이명복을 고종으로 앉히고 섭정의 전권을 준 효명세자비(헌종의 모후)인 신정왕후(조대비) 거처다. 흥선대원군이 보은의 차원에서 가장 크게 지어준 건물이다.  

 

Q-3 자경전과 십(10)장생 굴뚝

 

 자경전 : 흥선대원군은 신정왕후의 거처를 궐 안에서 가장 화려하게 만들어 은혜에 보답했다. ‘자경(慈慶)’이란 왕실의 안 어른께 경사가 있기를 바란다라는 뜻으로 정조가 즉위하면서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에 자경당을 지은 데서 비롯되었다.

 

자경전은 고종 때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옛 자미당(紫薇堂) 터에 조대비(익종 왕비·신정왕후)를 위하여 지은 건물로, 고종의 편전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자경전은 1867년 준공되었으나 1873년에 불이 나서 1888(고종 25)에 다시 44칸으로 지었다. 자경전은 정면 10, 측면 4칸의 네모꼴 건물로, 정면 1, 측면 2칸의 청연루와 정면 6, 측면 23칸의 협경당이 잇닿아있다. 고종 25(1888)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겨울에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복안당(福安堂),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도록 다락집인 청연루(淸燕樓)를 두었으며 여기에 협경당(協慶堂)이 붙어 있다

 

 자경전 안내도


자경전은 경복궁에 남아있는 유일한 침전 건물로, 조선시대 왕비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사방에는 행각과 담장이 둘러쳐 있는데, 정문은 남행각의 만세문(萬歲門)이다. 높은 기단 위 중앙에는 커다란 대청을 두고 양쪽에 커다란 온돌방을 두었으며 측면에는 누마루를 두고 앞뒤 쪽에도 툇마루와 온돌방을 두었다. 자경전의 후원에는 십장생 굴뚝과 꽃담으로 장식하였다.

 

 자경전 뒤뜰


원래는 자경전 일대가 상당히 커다란 규모였으나 대부분 없어지고 지금은 후원의 십장생 무늬 굴뚝과 꽃담이 남아있다. 조대비는 1890년에 아미산 뒤쪽의 흥복전에서 승하했다. 자경전 일곽에는 청연루, 만세문, 협경당, 십장생 굴뚝, 재수합 등이다

 

 십장생 굴뚝(굴뚝 煙家 10/ , , / 십장생무늬++나티+불가사리 / 거북 2)

 

자경전 십장생 굴뚝은 자경전 뒷담과 굴뚝을 조화롭게 결합하여 만든 것이다. 자경전에는 많은 온돌방이 있었는데 각 방과 연결된 연기 길을 모아 하나의 굴뚝으로 만들었다.

 

굴뚝 정면에는 가운데에 해, , , , 구름, , 소나무, 사슴, 거북, 불로초의 십장생무늬를 넣었고, 그 위와 아래에 학과 나티 및 불가사리를 배치하여 불로장생 등 길상의 기능과 악귀를 막는 벽사의 역할도 갖추도록 하였다. 굴뚝으로서의 실용적인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조형미가 빼어나 조선시대 궁궐 굴뚝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자경전 십장생 굴뚝 보물 제810호 안내 게시판 전부

 

자경전 굴뚝은 자경전 뒤꼍의 담 가운데에 있다. 이 굴뚝은 담보다 한 단 앞으로 나오게 하여 장대석 기단을 놓고, 그 위에 전돌을 쌓아 담에 덧붙여 설치했다. 벽면 상단에는 소로와 창방 서까래 모양을 전돌로 따로 만들어 쌓았고, 그 위에 기와를 얹어 건물 모양으로 만들었다.

 

건강하게 오래 살라는 의미가 담긴 십장생이 굴뚝에 새겨져 있어서 십장생(十長生) 굴뚝이라고 부른다. 십장생무늬는 가장 한국적인 무늬로 알려져 있는데, 굴뚝의 기능을 하면서도 꽃담장으로서의 조형미도 살려 조선 궁궐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1888년에 만든 것으로 가로 381, 높이 236, 두께 65이다. 그리고 십장생 그림에 나오는 동식물은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자경전 담장


굴뚝 지붕면 위에는 10개의 연가(煙家)를 얹어, 자경전 건물의 10개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여기로 연기가 빠져나가도록 했다.

 

굴뚝의 아랫부분 좌우에는 불가사리로 서수를 만들어 배치했고, 그 위로 장방형 공간을 만들어 해··구름·바위·소나무·거북·사슴··바다·포도·연꽃·대나무·백로·불로초 등을 조각했다. 그리고 윗부분에는 가운데에 용(나티), 그 좌우에 학을 새겨 놓았다.  

 

영국에서 단연 1위 코츠월드를 여행할 때

방갈로 개수만큼 다발로 묶인 굴뚝

화폭을 펼쳐놓아라 그 누구 생각일까?

 

해와 산 물 돌

구름 쫓는 학과 사슴

소나무에 불노초

거북은 불가사리

얼씨구 나티도 어우러진

불노장생 춤 한판

 

·바위·거북 등 십장생은 장수(長壽), 포도는 자손의 번성, 박쥐는 부귀(富貴), 나티·불가사리 등은 악귀(惡鬼)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이다. 십장생을 이처럼 장식하는 것은 고구려 고분벽화로부터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도자기·문방구류·베갯모·자수·회사 등에 많이 나타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원단에 궁궐에서 십장생도(十長生圖)를 걸어놓는 풍습이 있었다.

 

 자경전 쪽에서 교태전 출입문


R-1 아미산 

 

 아미산 굴뚝

 

 아미산 굴뚝

  

호구산 36m로 소주에서 최고봉이듯

아미산 높은 봉에 우뚝 솟은 굴뚝 굴뚝

돌함지 연못이 출렁거리니 달도 풍덩 해도 풍덩

 

 아미산 굴뚝


<아미산 굴뚝> 안내글판

왕비의 침전 뒤쪽에 인공으로 계단식 정원을 만들고, 가운데 단에 독립적인 육각형 굴뚝 4개를 나란히 세웠다. 흙을 구워 만든 연한 주황색 전벽돌 몸체 위에 기와지붕을 얹고 그 위에 4개씩의 작은 굴뚝을 모았다.

 

몸체에 조각된 여러 무늬는 각각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봉황은 왕비를, 박쥐는 부귀를, 매화와 군자는 심성을, , 사슴, 불로초, 소나무, 대나무, 돌 등 십장생은 장수를 뜻한다. 정원의 아랫단에는 돌로 만든 그릇인 돌함지와 화분 등이 놓였는데, 함월지는 달이 담긴 호수를, 낙하담은 노을이 비친 연못을 의미한다. 계단식 정원은 산을, 돌함지 따위는 호수를, 굴뚝의 무늬는 동식물들의 생태계를 상징하여 아미산 정원은 신선이 사는 자연의 세계를 상징한다.<아미산 굴뚝> 안내글판 전문

 

안내글판 내용을 추가한다면 교태전의 뒤뜰에는 경회루 터에서 파낸 흙을 쌓아 만든 가산, 곧 아미산이 있다. 이국적 정원인 아미산(峨嵋山)은 중국에 있는 불교 성지에서 따온 이름인데, '아미(蛾眉)'란 어원은 누에나방의 촉수처럼 털이 짧고 초승달 모양으로 길게 굽은 미인의 눈썹을 일컫는다고 한다. 세 개의 단을 쌓아 아름다운 교태전의 굴뚝을 세웠다. 또한, 호수나 연못을 상징하는 모양의 석함을 두어 산과 호수의 조화를 표현했다.

 

아미산의 굴뚝은 왕비의 생활 공간인 교태전 온돌방 밑을 통과하여 연기가 나가는 굴뚝으로, 현재 4개의 굴뚝이 서있는데 십장생, 사군자와 장수, 부귀를 상징하는 무늬, 화마와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들이 표현되어 있다.

 

십장생 굴뚝은 10개를 담장에 직사각형 모양으로 하나의 굴뚝을 세운 반면, 아미산 굴뚝은 육각기둥 4개가 독자적으로 세웠다. 그런데도 아름다운 교태전의 후원과 굴뚝을 서로 연계시키며 아늑하게 감싸며 조화를 이룬다.

 

 강녕전·교태전(아미산)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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