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두 경복궁 탐방기 11 육조거리에서 경복궁역 ⑤번 출입구까지

정흥교 | 기사입력 2020/09/24 [06:41]

안희두 경복궁 탐방기 11 육조거리에서 경복궁역 ⑤번 출입구까지

정흥교 | 입력 : 2020/09/24 [06:41]

 


1. 육조거리

 

서울특별시청 인근 버스 주차장에서 내려 경복궁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다시 환승해서 광화문 인근으로 편하게 갈 수 있지만,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 넓은 육조거리를 상상하며 세종대로를 다시 거닐고 싶어졌다. 세종대로는 조선시대에도 지금처럼 확 트였다고 한다.

 

태종이 한성으로 재천도한 뒤 광화문 앞에는 대로를 마주 보며 동쪽에는 의정부, 이조, 한성부, 호조, 기로소(耆老所)를 설치했고, 서쪽에 예조, 중추부, 사헌부, 병조, 형조, 공조, 장예원 등을 설치했다. 따라서 이곳을 육조(六曹) 앞 또는 육조거리라 불렀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 동상

 

 세종대왕 동상

 

오늘날 육조거리는 이순신 장군이 남해를 지키듯 앞장서서 밤낮으로 지키고 있다. 집현전 학자들은 세종대왕과 격의 없이 토론하며 한글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인공지능(AI) 시대의 공용어로 한글을 사용하려 연구실은 밤새도록 환하다. 또한 장영실 팀장을 중심으로 자율운행 드론을 타고 길 위에 수많은 길을 개척하고 있다. 육조거리를 걸어 경복궁을 향하면서 주산을 북악산으로 잡을까 인왕산을 잡을까 정도전과 무학대사의 논쟁은 뜨겁다.   

 

2. 광화문 역사광장

 

 광화문 월대 표지석

  

1395(태조 4)에 건립한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 이후에 경복궁 대신 창덕궁과 창경궁을 중건하여 중심 궁궐로 사용하였다. 고종이 즉위한 후 흥선 대원군은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자 경복궁을 중건하였다. 동시에 광화문 앞에 월대를 넓고 길게 사용하여 경복궁의 권위와 품격을 한층 높였다. 이제 경복궁 복원 사업으로 광화문을 원래 위치에 다시 세우면서 월대 일부를 복원하였다.광화문 월대 표지석

  

 광화문 주변 복원 예정

 

자주는 아니었지만, 광화문 광장을 걸었고 시사에 그래도 관심을 두는 편인데 광화문 앞에 월대가 있다는 말은 나의 기억에 없다. 다만 궁궐을 탐방하며 자료를 찾다가 광화문 광장이 바뀐다는 글을 접했고, 해치상 표석을 찾다가 광화문 월대 표지석을 마주했다. 이번에 첨가할까 다음으로 미룰까 고민하다가 소개한다.

 

월대는 궁궐의 중요한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를 말한다. 예전에 교실 칠판 아래마다 놓였던 교단을 연상하면 된다. 임금과 백성의 소통 장소로 통했던 곳이 바로 경복궁 광화문 월대다. 세조는 백성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 광화문 앞 광장을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세조는 주서와 사관에게 "광화문 밖에 직접 나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만나 말 할 기회를 주라"고 지시했다. 백성들은 제비를 뽑아 자신들의 억울함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육조거리를 향해 뻗은 광화문 월대는 길이가 52m, 폭은 29.5m였는데 일제강점기 시절 없어졌다.

 

문화재 복원에 있어 완전하게 옛 모습으로 재건하는 것도 아닌데 현재 모양을 꼭 비틀 필요가 있을까? 전문가들의 많은 의견을 반영했겠지만, 월대를 복구한다면 조선시대로 돌아가 완결하게 복구하길 바란다. 연말이면 남은 예산 처리를 위해 도로를 이리저리 파헤치는 모습은 없었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율곡로와 사직로, 세종대로 사이에는 경복궁의 장점인 대칭성을 반영했으면 한다.   

 

3. 해치상

 

 현재는 해치상이 광화문 앞 담장 가까이 있다.

  

지금은 해치상이 광화문 바로 앞 좌우에 있지만, 원래는 현재의 위치에서 앞으로 대략 50앞에 <해치상 있던 곳>이란 표식판이 있는 곳이다. 이곳이 바로 육조 중 사헌부 앞과 건너편으로 해치상이 마주 앉아 있었다. 대표적 사법 기관인 사헌부는 시정의 잘잘못과 관원의 비리를 조사하여 탄핵하는 부서다. 그래서 사헌부 관리들은 다른 부서 관리와 달리 관복에 해치 흉배를 하고 해치관을 썼다고 한다.

 

 202087일 광화문 광장


해치는 상상의 동물로 사람들의 잘잘못을 가려서 잘못이 있는 사람은 벌로 머리에 난 뿔을 사용하여 찔렀다고 한다. 그런데 광화문에 있는 해치는 뿔이 없다. 해치상 바로 앞에는 하마비가 있었단다. 궁궐에 들어오는 사람은 가마나 말을 타고 올 때 가마와 말에서 내려 걸어서 경복궁에 들어갔다고 한다.  

 

 광화문 앞 서쪽 <해치상 있던 곳(정부서울청사 앞 건널목 하나 건너 바로)>


암수 한 쌍인 해치상은 일제강점기인 192310월 전차의 차로에 방해가 된다고 치워버렸다. 1925년에야 총독부 청사 서편 담장 밑에서 방치된 것을 찾았단다. 해치상은 총독부 건물 완공 후 다시 청사 앞으로 옮겨졌으며, 해방 후 광화문이 복원되면서 원형 그대로 광화문 앞에 돌아왔다. 다만 기단석은 서로 바뀌거나 일부 교체되었어도 해치상은 원형이란다. 천운이다

 

 광화문 앞 동쪽 <해치상 있던 곳> 표식판


광화문도 없애려다

역풍에 겨우 살아나

동쪽으로 피난살이

6·25 때 집중 포격

쫓기듯

육조거리에서 총독부로, 대로로, 광장으로

참 많이 바뀌었지  

 

4. 동십자각과 서십자각

 

동십자각으로 다가가 다시 한번 경복궁 동쪽과 남쪽 담장이 만나는 근처 도로에서 바라보았다. ‘의 형태는 높다란 석대 위에 2층 누각을 세운 것이 일반적이란다. 궁궐(宮闕)이나 대궐(大闕)은 같은 말이고 궁()과 궐대(闕臺 : 궁궐문 양옆에 설치한 두 개의 대)의 복합어인데, 경복궁의 이궁을 여러 개 건축하면서도 더욱이 임금이 사는 궁에도 궐()을 붙이지 않았다. 궐대(闕臺)가 없기에 궁궐(宮闕)이라 부를 수 없단다. 그냥 궁전(宮殿)’일 뿐이란다.

 

광화문의 담장이 어깨를 걸고 춤을 추듯 동·서십자각과 함께 날아올랐다면, 국권이 강했으면 왜놈들이 함부로 헐어내고 도로를 만들었을까? 사지가 다 잘려나가고 목숨만이라도 붙어 있는 게 다행이지, 자칫 서십자각과 같이 사라졌다면 도로를 막고 다시 세웠을까?

 

조선시대 궁궐의 정문 가운데 유일하게 궐문 형식을 갖추고 있는 곳은 경복궁 정문이다. 동십자각(東十字閣)과 서십자각(西十字閣)은 함께 궁성 전면 양쪽 모서리에서 궁궐 안팎을 감시할 수 있도록 세운 것이다. 그러나 1923년 조선부업품공진회 개최를 앞두고 영추문까지 부설 중인 전차의 길에 방해가 된다고 서십자각을 아예 허물어버렸다. 동십자각도 1929년 도로 확장을 위해 궁장(궁궐담)이 잘려버리고 말았다.

 

 동십자각은 궁성의 남동쪽 모서리에 있는데, 궁성 담장이 헐리면서 현재 길 한가운데 서 있게 되었다. 동십자각은 궁성의 동남쪽 모서리에서 있는 각루(角樓)이다. 규모는 작으나 조화로운 예술적 조형미로는 경복궁 내 뛰어난 건축물 중의 하나로 꼽는다.

 

 서십자각 터 표식대로 20164월 설치했다. 국립고궁박물관 쪽문 근처에 도로가 꺾여지는 곳에 있다. 동십자각이나 서십자각은 원래 궁궐과 연결된 궐대이다.

 

 서십자각 터 표식대


동십자각은 경복궁에서 유일하게 조선 개국 당시의 건물이란다. 보수는 여러 번 거쳤지만 임진왜란의 화마에도 살아남았고, 일제강점기에도 꿋꿋하게 고된 역사의 질곡을 뚫고 나왔다. 또 있다면 바로 앞에서 이야기 한 해치상이다.   

 

5. 경복궁 쪽문과 국립고궁박물관 전철역 번 출구

 

 경복궁 남서쪽 쪽문


경복궁 쪽문을 들락거리다 

 

경복궁 옆 효자로

끝나는 그쯤 쪽문

담장 헐고 만든 사연

클릭해도 암흑이다

한 바퀴 돌아서 간다해도

기껏해야 찰나인데

 

 경복궁 남서쪽 쪽문으로 경복궁역 번 출구와 번 출구 일직선상에 있는 쪽문, 역세권에 출구까지 품에 안고 성곽을 뚫고 쪽문까지 열어놓았으니 경복궁 가치를 얼마나 드높였을까?

 

 경복궁역 번 출구


용성문 밖에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의 소중한 왕실의 문화유산들을 소장하고 전시하는 국립고궁박물관(國立古宮博物館)이 있다. 1993년 용산으로 옮겨 가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옛 건물에 조선왕실역사박물관을 건립하기로 결정하고, 광복 60주년인 2005815일 역사적인 개관을 맞이한 후 다시 200711283개층 전관을 개관하게 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國立古宮博物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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