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두 경복궁 탐방기 12 광화문에서 영제교의 능글맞은 천록까지

정흥교 | 기사입력 2020/09/27 [21:13]

안희두 경복궁 탐방기 12 광화문에서 영제교의 능글맞은 천록까지

정흥교 | 입력 : 2020/09/27 [21:13]

 


6. 광화문

 

 광화문과 청와대 그리고 인왕산

 

광화문은 1395(태조 4) 경복궁 창건 당시 건립되었고, 창건 당시에는 특별한 이름이 없이 오문(午門)으로 불렀다. 태조 4(1395) 정도전에 의해 '정문(正門)'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세종 8(1426)에 집현전에서 왕의 교지가 경복궁을 나서는 순간 사방(四方)에 널리 퍼져 교화(敎化)가 만방(萬方)에 미친다는 뜻으로 광화문(光化門)'이라고 이름을 지어 올렸고,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광화문은 다락 3칸의 상, 하층으로 돼 있고 종과 북을 달아서 새벽과 저녁을 알렸다고 한다.

 

 광화문 밖에서

 

 광화문 궁 안에서 밖을 향해

 

광화문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865(고종 2)에 재건되었다. 그 후 1926년 조선 총독부 청사 건축으로 광화문(光化門)19267월부터 해체되어 이듬해 9월에 건춘문(建春門) 북쪽,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입구로 옮겨졌고,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문루가 부서지고 석축은 탄흔투성이가 되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정문으로 일제강점기 광화문이 이곳으로 옮겨졌었다.

 

현재의 모습은 1968년에 옛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그러나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했으며 중심축이 구 조선총독부청사의 축에 맞추어져 있어 원래의 광화문 자리에서 14.5m가량 뒤로 물러나 서 있게 되었다.

이렇게 원형을 잃어버린 광화문을 복원하고자 2006년부터 철거작업을 시작해 38개월간 복원 공사를 마치고 2010815일 완공하였다. 화강암으로 육중한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2층의 문루를 얹어 멀리 조망하기 좋을 뿐 아니라 궁궐 정문으로서의 위엄을 나타내게 되었다. 4대문 중 광화문을 제외한 건춘문, 영추문, 신무문은 홍예도 하나요, 문루도 1층이다.

 

그러나 기단 위에 있는 3개의 아치형 홍예문은 경복궁이 조선의 정궁이라는 위엄을 과시한다. 출입문 중앙은 왕만이 다니는 어문(御門)이고, 좌우에 협문(狹門)으로 동쪽은 문관, 서쪽은 무관이 다니는 길이다. 무엇보다 광화문을 출입할 때마다 천정을 보라.

 

그리고 光化門!

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敎化)가 만방에 미친다.

 

 왕이 드나드는 중앙문에 하늘을 나는 주작은 여의주와 화려한 깃털로 상서로움을 넘어서 아름답고 신령스럽다. [雙鳳]

 

 무신이 드나들던 서쪽 홍예문에는 파도를 헤쳐가는 거북 [洛龜負書]

 

 문신이 드나들던 동쪽 홍예문에는 두 개의 뿔을 가진 한 쌍의 기린이 구름 속을 난다. [河馬負圖]


7. 흥례문 권역 

 

 

흥례문 권역 지도

  

광화문을 들어서면 중앙에는 근정전(勤政殿)으로 들어가는 흥례문(興禮門), 동쪽에 협생문(協生門), 서쪽에는 용성문(用成門)이 있다. 이곳에서 세조는 145511월에 국가비상훈련을 했다고 한다. 임금의 명령이 떨어지면 광화문에서 소라와 대각을 불고 후원에서 신기전을 쏜다. 이것을 신호로 백악산, 남산, 흥인문, 성균관 북쪽과 인왕산 고개, 돈의문 등 궁궐 밖 여섯 곳에서 모두 대각과 신기전으로 호응을 했다고 한다.

 

 용성문(用成門)은 광화문과 흥례문 사이 공간 서쪽에 있는 문으로 왕이 경복궁 후원이나 신무문(북문)이나 영추문(서문)을 통해 궁 밖으로 이동할 때 사용되었던 문이다.

 

 협생문은 광화문과 흥례문 사이 공간 동쪽 내부 담장에 난 문으로 세자가 동궁으로 드는 오른편 측문에서 출발해 광화문 밖으로 나갈 때 주로 이용했던 정면 1, 측면 2칸의 구조의 문이다.

 

광화문을 들어서면 좌우에 수문장청(守門將廳)이 있다. 그리고 동편에는 따로 영군직소(營軍直所)가 있는데, 모두 궁궐의 수비를 관장하던 건물들이다. 궁궐 문을 지키는 수문장(守門將)이 교대하는 의식이 있는데, 그 수문장이 머무는 각사가 바로 수문장청이다. 수문장 교대의식을 비롯하여 파수의식, 공개 훈련 등도 관광거리다.

 

 동수문장청

 

 서수문장청

 

 초관처소(哨官處所)는 순라 및 수비병 숙소로 광화문 안쪽으로 들어서면 동수문장청을 지나 광화문과 동십자각으로 이어지는 담장 옆에 있다. 초관처소 오른쪽은 영군직소(營軍直所)이다.

 

 매표소

 

 흥례문을 통하여 입장

 

 흥례문


8. 흥례문(興禮門)

 

흥례문은 경복궁 창건 당시인 1395년 정면 3, 측면 2칸의 중층의 목조건물로 지어졌고,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근정문 사이에 있는 중문이다. 세종 8년에 집현전 학자들에게 문의 이름을 짓게 하였는데, ()를 널리 편다는 뜻인 흥례문(弘禮門)이라 했다. 홍례문은 임진왜란으로 1592년 소실되었고, 1867년에 중건하였다. 그러나 고종은 재건하면서 당시 청나라 乾隆帝(건륭제)의 이름자인 '弘曆(홍력)'을 피해 현재의 흥례문(興禮門)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근정문 쪽에서 바라본 흥례문, 열린 문 안으로 광화문이 보인다. 흥례문 밖에선 중앙에 하나의 돌길이 보였지만 흥례문 안에선 중앙에 어도가 있는 3도가 뚜렷하다.

  

흥례문 동쪽으로 들어오면 표를 검사하고 곧바로 오른쪽으로 돌면 <무료 해설 관람> 접수처가 있다. 한국어 해설만 진행하는데 11:00, 13:00, 14:00, 15:00, 16:00시였는데, 30분 전부터 선착순이란다. 혹시 접수하는 사람이 많을까봐 첫 번째인 11:00시 해설을 신청하러 9시에 왔는데 우리 부부가 처음이었다. 822일부터 다시 경복궁 해설 관람 운영이 코로나19로 잠정 중단하고 있다.  

 

9. 금천과 영제교(永濟橋)

 

흥례문에서 근정문 사이 빈 공간에 가장 중요한 것이 금천이다. 이곳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금천(禁川)이 있다. 풍수가들이 경복궁에 명당수가 없는 게 흠이라고 하니 태종은 개천을 파라고 지시했다. 2개월 후 경복궁 서쪽 모퉁이를 뚫고 이 개천으로 물을 끌어들인다. 금천(禁川)이다. 북악산 골짜기의 물을 영추문 안으로 흐르게 하여 경회루 연못에서 빠져나온 물과 합친 뒤 근정문 앞을 지나 흥례문 동쪽 행각 밑으로 빠져나가 청계천으로 흘러가게 하였다.   

 

칼잡이도 무서웠나?

천록이 사는 금천

회를 뜨듯 해부해도

능글맞은 저 웃음

천록의 끈질긴 생명력

되살아난 영제교

 

 영제교

 

흥례문에서 근정전으로 향하는 길에 금천을 가로지르는 어도(御道)가 영제교(永濟橋) 이고, 이를 제외하고는 다른 시설물이 없이 텅 비워진 신성한 공간이다. 이 금천은 경복궁의 외부와 내부를 구분한다. 근정전에 행사가 치러질 때면 문무백관은 형식을 갖추고 외부공간인 금천 밖에서 대기한다. 다시 말하면 금천교를 건너면 왕의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금천에 천록


영제교 동서로 천록이 각각 2마리씩 금천을 지키고 있는데 사악한 무리를 다리나 물을 통해 들어오는 것을 막아준다고 한다. 또한 입궐하는 신하 마음을 씻고 액운을 물리치는 역할도 했다. 천록의 얼굴을 보면 능글맞아 보이면서 친근감이 가는 미소 띤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데 우리 선조들의 해학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제교는 총독부가 건설되면서 다리가 해체되어 수정전 앞에 쌓아놓은 것을 2001년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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