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날아다니던 길이 험지로 바뀌었다. 토끼재를 지나 광교산 정상에 다다랐는데 길이나 게시판이 오히려 방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쉬느라 머물다 보니 노루목 쪽에서 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데, 토끼재에서 오는 사람들은 거침없이 노루목 쪽으로 사라졌다. 설마 산에 오는 사람들이 정상까지 37m 남았다는데 힘들다고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랴? 이정표가 수원시와 용인시로 다툴 뿐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정상을 알리는 배려는 적은 것 같다. 아니 정상에 오른 기쁨을 빼앗아 가고 칠칠치 못하다는 아쉬움만 선물하는 것 같다.
앞만 보고 뛰었다. 2015년 4월 18일 저녁부터 봄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19일 오전 8시경부터 비가 그치나 했으나, 수원 공설운동장에서 출발한 지 10분 만에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13회 경기마라톤인데 골인 지점에 들어올 때도 여전히 비가 내렸다. 기록은 4시간 39분 03초. 자세한 내용은 수원인터넷뉴스(2015/04/26 「억수로 쏟아지는 봄비를 뚫고 마라톤 풀코스를 내달리다」)를 참고하기 바란다. 나의 신조는 ‘할 수 있다. 그쯤이야 나도 한다’ 는 도전 정신이었다.
광교산 정상인 시루봉(582m)까지 오르며 별의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간다. 예전에 대략 1시간 30분이면 오던 길인데, 12시 27분이니까 3시간 17분이나 걸렸다. 그나마 아직 이렇게라도 걸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그만하길 多幸이다
쏘다니기 바쁘니 그만하길 千萬多幸
바쁘게 하루하루가 흘러 行福해서 幸福하다
아직 걸어 다닐 수 있어 행복하다는 필자의 시조다. 이 시조를 쓸 때만 해도 하루에 9㎞를 뛰어다닐 때인데 불과 1년 전부터는 저기 버스가 와도 체념해야 한다. 버스에 올라타도 균형을 유지하기 어렵다. 전철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버스에서 쩔쩔매는 노인들을 보면 ‘택시를 타고 다니지. 복잡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승객들에게 피해를 주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정작 나도 택시비가 아까워 이용하기 쉽지 않다.
노루목을 거쳐 억새밭까지 왔는데 억새는 없고 돌무더기만 건장했다. 예전에도 억새밭을 복구하려고 꽤나 노력했었던 것 같은데 아쉬웠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헌책방을 누비며 책을 구입하고 줄을 쳐가며 읽던 수많은 책, 문예지는 거의 버렸음에도 서재에는 시집과 수필집, 소설, 철학, 미술 등 단행본과 자연과학과 수학사 등 책장이 15개 정도였나 보다. 지난해 눈물을 흘리며 문예지를 일삼아 버린 것이 2,000여 권 되는가 보다. 아직도 남아있는 책들은 앞으로 정리하려고 한다.
고1부터 스크랩하던 신문은 결혼하며 버렸고, 일요일이면 습관처럼 스크랩하던 것도 두세 번 버린 것 같다. 예전엔 스캐너가 프린트와 별도였는데 둘 다 구입하여 자료들을 컴퓨터에 모으기 시작했다. 스캔한 것을 한글로 읽어 들이는 아르미 프로그램까지 사들이며 모았던 자료들이 외장 하드 10여 개에 담겨있는데 버리려니 마치 사별하는 것 같다.
나의 청춘과 함께 엄청나게 쏟아부은 시간이 이곳 억새밭 돌무더기를 무너뜨릴 기세로 스쳐간다. 내가 죽은 후에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시절이 와서 문학관이 세워진다면 필요한 자료들인데 30여 년을 더 기다리지 못하고 내 손으로 버려야 하나? 거의 방문객이 없는 카페도 그렇다. 스크랩을 이제는 컴퓨터의 카페에 분류해왔는데, 저작권 문제가 있어 비공개로 저장해 놓았다(2만여 개). 이것도 마우스 클릭 한 방으로 날려야 하나?
약수터로 유명한 광교산 절터는 고려 때 높은 위상을 지녔던 사찰로, 현재 1만 3,995㎡ 면적의 절터만 남아있다. 예전에는 법성사라 불렀는데, 2010년에 창성사로 개명했단다. 규모도 크고 밤낮으로 예불을 올리던 스님도 많았을 텐데 남아있는 건 공허한 터에다 약수뿐이다. 지금도 나 자신이 무명에 가까운데 무슨 부질없는 꿈을 꾸는가. 법정 스님도 ‘말빚을 지지 않겠다’ 하셨는데 세찬 바람이 나의 볼을 때리고 간다. https://blog.naver.com/damool38/221528649352광교산 창성사지
육신을 다비하고 사리를 흩뿌려도
붓으로 뿌린 법문 산과 바다 덮었는데
보시한 말빚을 지지 않겠다 꿈만은 크십니다
아내와 나는 잔치국수를 먹고 상광교 종점에 도착했다. 이곳에도 멋진 다슬기 화장실이 있다. 여기까지 대략 3시간 20분 거리였는데, 오늘은 13시 57분이니까 4시간 47분이나 걸린 셈이다.
얼마나 힘차고 휘영청 찬란함인가 우뚝 서서 바라보기엔 너무나 거룩하다 온 누리 밝게 비추소서 두루두루 감싸소서
고 심재덕 회장은 2009년 사망하며 생전에 건축한 장안구 이목동 변기 모양 주택 ‘해우재’를 수원시에 기증했고, 염태영 시장은 이를 화장실문화전시관으로 개조해 화장실문화 운동의 메카로 활용되고 있다.
광교산의 거룩한 울림이었다. <저작권자 ⓒ 수원인터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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