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인의 눈으로 본 수원화성은 어떨까?

홍성철 개발팀장과 함께 한 수원화성

정흥교 기자 | 기사입력 2015/09/18 [01:31]

외지인의 눈으로 본 수원화성은 어떨까?

홍성철 개발팀장과 함께 한 수원화성

정흥교 기자 | 입력 : 2015/09/18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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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인터넷뉴스] 정흥교 기자, 도석훈 기자 = 수원 화성(華城)은 길이 5.4킬로미터의 성곽으로, 1963년 사적 3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여도 성문 4(장안문, 팔달문, 화서문, 창룡문)만 일반인에게 보여지고 나머지 성곽길은 우범지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지금처럼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수원화성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화성을 축성할 때에 여러 가지 과학 도구가 많이 사용되어 과학을 발전시킨 계기가 되게 하였고, 거중기와 녹로 같은 도구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정학용 같은 실학자들의 등장을 촉진하고 기존 세력의 위축을 가져오는 효과를 가졌다고 한다.

 

 

이전의 국가의 큰 공사때에는 백성들을 무조건 강제동원을 하여 이를 피해 도망다니는 백성들이 나왔지만, 정조는 공역자들에게 인건비를 지급하고, 척서단과 제중단 등의 환약을 내려 주었다고 한다. 오히려 백성들이 솔선수범하고 더운 여름날에도 쉬지 않고 공사에 참여하여 쓰러지는 백성이 나왔다고 한다. 너무 덥거나 인건비가 미지급 될 때에는 공사를 일시 중지하는 애민정신을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수원지역의 백성들을 안전하게 수원화성 안에 수용하려고 설계를 변경하면서까지 백성들을 가능한 많이 성안으로 끌어들였다고 한다. 백성을 신분차별없이 사랑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많은 언론매체와 개인 블로거들이 수원 화성의 아름다움에 대해 기술해 왔다. 수원에서 활동하는 기자와 시민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수원화성에 대해서 느껴 봤지만, 외지인의 눈에 보이는 수원화성은 어떠할까? 라는 궁금한 마음이 생겼다.

 

 

마침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후배 홍성철 팀장이 수원을 방문한다고 하여, 날을 정해 홍성철 팀장의 지인들인 권철숙씨와 강덕근씨가 같이 합류했다.

 

홍성철 팀장은 게임업체에서 개발팀장을 맡고 있다. 권철숙 사장은 경기도 김포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고, 강덕근 사장은 제주도에서 요식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귀한 시간을 내준 데에는 홍성철 팀장의 공이 컸다.

 

 

먼저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연무대에서 출발하여 장안문 방향으로 일주를 시작했다. 화성에는 두 곳의 장대가 있다. 동문인 창룡문 가까이 있는 동장대와, 팔달산의 정상부근에 위치한 서장대이다. 동장대의 현판은 연무대라고 적혀있다. 연무란 군사들을 조련한다는 뜻으로, 동장대는 연무대 건물과 앞쪽 우측으로 솟을삼문, 그리고 좌측으로는 네 칸의 창고인 듯한 전각이 담장 안에 자리하고 있다.

 

 

먼저 이곳을 안내하고 홍팀장에게 물었다. 기분이 어떠냐고? 아주 상쾌하단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가 아주 기분 좋게 만든다고 했다. 계속 화성을 따라 이야기를 나누면서 홍 팀장에게 일반인의 입장과 정조 이산의 입장이 되어 기자 질문에 답해 달라고 부탁했다. 외지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규모의 성이 수원도심을 가로지르면서 현존하고, 이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아주 부럽다는 말을 했다.

 

 

수원시민들은 수원화성이 220여년전부터 존재하고 봐 왔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수원방문객들은 느낌이나 체감이 몇배 이상으로 크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방화수류정에 이르니 목이 말라서 생수를 구입해 마셨다. 수원화성의 백미는 방화수류정이라고 할 수 있다. 홍팀장을 옆에서 보니 아주 흡족한 표정이었다. 또한 화홍문이 같이 자리잡고 있어서 방화수류정에서 경치를 감상하고 화홍문으로 내려와 시원한 물줄기를 바라보니 절로 기분이 상쾌해지고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화성 밖에서 방화수류정과 화홍문을 감상하라고 권했다. 화성 내부 방화수류정에 서서 풍경을 바라보면 풍치있는 모습이지만. 막상 밖에서 바라보니 화성 밖의 편하지만은 않은 그 옛날의 백성들 상황과 화성 내부의 편안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장안문에 이르렀을 때에 장안문에서 종합운동장 방향으로 진행하는 길을 보고 수원의 관문인 지지대 고개를 지나 이 장안문을 통과하여 수원화성으로 들어온다고 설명하면서 홍팀장에게 감상을 물었다. 관람객의 입장에서 당연히 시원하고 좋다고 했다.

 

 

 

정조의 입장에서 물으니 이곳을 들어가거나 나갈 때에 희노애락을 느꼈을 것 같다. 들어 올때에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만난다는 기쁨과 수원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났을 것이다. 한양으로 올라갈 때에는 아버지와 백성들과 헤어진다는 슬픔이, 그리고 아버지를 이렇게 만들고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기존 구세력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안식처를 만들고 몇 년 못살고 이 세상을 뜨게 되는 정조에 대한 안스러움과,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다시 또 조선 정치가 후퇴하고 그로 인한 여러 가지 평지풍파를 겪게 되는 조선과 대한민국의 역사를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수원 화성은 한국 성의 구성 요소인 옹성, 성문, 암문, 산대, 체성, 치성, 적대, 포대, 봉수대 등을 모두 갖추어 한국 성곽 건축 기술을 집대성했다고 한다. 이를 홍팀장과 일행에게 설명을 하고 직접 보여주니 말로만 듣던 수원화성과 직접보는 수원화성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달라진다. 수십번도 더 와서 본 수원화성이지만, 홍성철 팀장에게 설명을 하는 본인에게도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장안문에서 화서문으로 발길을 옮기며 우측의 화성 바깥 풍경을 보니 많은 사람들이 장안공원에 나와서 장기를 두거나 산책을 하고 있었다. 한낮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한껏 만끽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서북공심돈과 화서문을 지나 서북각루에 이르렀다. 서북각루는 비교적 화성의 높은 곳에 위치하여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설이다. 신발을 벗고 서북각루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면서 화성 밖의 풍경을 보니 시원하면서도 편안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홍팀장에게 정조의 시각으로 화성 밖을 바라보니 어떤 느낌이냐고 물었다. 화성 안으로 수용이 된 백성들은 적이 쳐들어 와도 어느 정도는 안심이 되지만, 어쩔 수 없이 화성 밖에 남게 된 백성들을 보니 가슴이 아려 온다고 한다. 이 얼마나 백성을 사랑하는 군주인가? 정조를 군주로 둔 조선 백성은 얼마나 행운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정조라는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홍 팀장의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서북각루에서 두발을 뻗고 쉬니 그대로 잠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지체하면 안될 것 같아, 서장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언덕을 조금 오르니 금방 서장대에 이르니, 남수원 시내가 보였다.

 

 

 

화성행궁과 화성광장, 그리고 옆에 곧 OPEN할 아이파크 미술관이 전통과 현대의 멋이 같이 어울리지 않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눈길을 조금 더 위로 주니 수원화성 박물관과 팔달구청이 보였다.

 

 

연무대를 찾는 관광객이 국궁체험을 하고 박물관을 보고 바로 여민각을 거쳐 화성행궁으로 연결되는 동선이 한눈에 보이지만, 걷기에는 조금은 먼, 차를 타기에는 귀찮은 감이 있었다.

 

서장대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정조도 서장대에서 수원을 내려다보며, 군사들을 지휘하면서 만감이 교차하였을 것이다. 

 

 

 

서장대에서 서남암문으로 향하는 길이 넓게 보여 홍팀장에게 100m 출발 포즈로 스타트를 시켜보기도 하고, 유서 깊은 효원(孝園)의 도시이자 날로 발전하는 수원의 상징인 효원의 종을 타종하면서 즐겁고 편하게 팔달산을 만끽했다.

 

 

 

 

로데오 거리 방향으로 내리막 길을 걸으니 많은 관광객들과 가족단위의 방문객들이 화성에 오르고 있었다. 로데오 거리에 이르니 청소년 공연장에서 벼룩시장이 개장하여 재미있는 물건들이 많았다.

 

 

 

뭇골시장에 들려 식사를 하고 창룡문 방향으로 향하면서 하늘을 보니 너무 맑고 좋았다. 이런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이렇게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20년전에 본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부인을 죽인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하는 주인공이 몇십년에 걸쳐 탈출 계획을 세우고 마침내 감옥밖으로 탈출하여 비내리는 컴컴한 밤에 아무것도 안보이는 하늘을 보며 감동하는 모습이 생각이 났다. 감옥에서 바라보는 날씨 좋은 맑은 하늘보다도 자유를 얻고 바라보는 비내리는 컴컴한 하늘이 주인공에게는 훨씬 더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하물며 자유스러운 시대를 살면서 좋은 날씨에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을 볼 수 있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사람은 소중한 것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그 소중함을 모른다고 한다. 자신의 손에서 소중한 것이 사라질 때 비로소 소중함을 느낀다고 한다. 수원에 위치하고 있어서 당연한 모습의 수원화성이지만, 외지인들에게는 얼마나 아름답게 보일까? 그리고 수원시민들이 얼마나 부러울까?

이는 수원시민들보다는 외지인들이 훨씬 더 잘 알 것이다.

 

 

홍성철 팀장과 일행에게 수원화성을 안내하면서 소중함을 새롭게 깨달은 하루가 되었으며, 개혁군주 정조의 사랑과 슬픔 그리고 미처 이루지 못한 그의 꿈이 아직도 우리에게 꿈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하루였다고 생각한다.

 

이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준 홍성철 팀장에게 감사를 표하며, 아직도 수원화성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과 이를 더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뜻 깊은 하루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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