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은 상당한 열정을 가지고
건설한 성이다.

여행전문가 WTC 박영종 대표

수원인터넷뉴스 | 기사입력 2015/10/01 [16:09]

수원화성은 상당한 열정을 가지고
건설한 성이다.

여행전문가 WTC 박영종 대표

수원인터넷뉴스 | 입력 : 2015/10/0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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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인터넷뉴스] 정흥교 기자 = “저는 여행전문가가 아닙니다. 그저 등산과 여행이 좋아 전국의 산과 들, 이곳 저곳을 많이 다녀서 다른 분들보다 조금 더 알고 있는 것 뿐입니다.” 여행전문가라는 본 기자의 말에 수줍은 듯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박영종 대표가 한 말이다.

 

그저 여행을 좋아 한다고 하지만 본 기자의 눈에는 여행전문가로 보일 정도로 지식과 정보를 상당히 축적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행전문가로 인정하고 싶다.

 

 

등산이나 여행을 상당히 좋아하여 주말에는 친목 단체 회원들과 같이 전국의 여러곳을 다닌다고 한다. 수원과의 인연을 물어보니 이전에 몇 번 광교산을 오르기 위해 방문한 적이 있고, 최근에는 개인적인 일로 한달에 두 번씩은 방문하지만, 아무래도 구시가지에 속하는 팔달문 지역보다는 동수원이나 광교 지구 쪽으로 많이 오게 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수원 화성과 이와 관련한 문화재 구역이나 박물관은 온적이 없다는 것이다. 약속을 오후 3시로 잡고 팔달문 근처에서 만났다. 1개월만의 만남이었다. 수원화성을 같이 돌아보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내준 것이다.

 

 

화성을 돌기 전에 먼저 정조를 만나서 술 한잔하라고 권했다. 영동시장으로 들어가 정조 앞에 앉아 오늘 수원화성을 보러 왔습니다. 아무쪼록 잘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영화 사도를 꼭 보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보아야, 당신의 생각과 이루고자 했던 목표를 이해할 것 같아서입니다.”라는 말을 올리고 수원화성에 오르기 시작했다.

 

 

박영종 대표에게 수원화성에 대해서 아는대로 설명을 부탁했다.

 

수원화성은 총 5.4Km48개의 시설물 (미복원 포함)이 축조되었고, 주요시설 23개소에는 예술적 가치가 높은 한국 고유의 누각을 설치하였고, 축성 동기가 군사적인 목적보다는 정치, 경제적 측면과 부모에 대한 효심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도시기반 시설인 문, 도로, 다리, 상가 등을 설치하고 생산기반 시설인 저수지와 둔전을 경영하게 해 계획된 신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중국, 일본 등과는 달리 평지와 산지에 걸쳐 축조된 독특한 형태의 포곡식 산성으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정치,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습니다.

 

화성은 18C 동양의 성곽을 대표하는 한국 전통 건축의 완성품으로 축성의 계획, 제도, 법식 뿐만 아니라 인력의 인적상황, 재료의 출처 및 용도, 공사일지 등이 '화성성역의궤'에 완벽한 기록으로 남아 있어 건축사적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역시 여행전문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적인 지식에 기초한 이야기였다.

 

 

영동시장에서 화성을 오르기 시작하자 계단에 인위적으로 보이지 않게 제작한 조명등이 보였다. 제작을 한 수원화성 관리당국의 배려가 돋보였다.

 

 

앞으로 나아가니 게이트볼 경기장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한가롭고 편안하게 보였다. 이전에는 놀이기구가 너저분하게 있던 곳을 수원시가 어르신들을 위해서 게이트볼 경기장으로 바꾸어 관리하는 곳이다. 간단하게 게이트볼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스틱으로 공을 쳐 게이트를 통과시키는 경기로, 1970년대 중반에 골프와 당구의 기법을 기본으로 일본에서 개발되었다.

 

 

처음에는 나라나 단체마다 경기 규칙이 달랐으나 1985년에 규칙이 통일되었다. 한 팀은 보통 감독 한 명에 경기자 5~7명으로 구성되며, 감독은 경기자로 뛸 수도 있다.”

 

 

 

 

원래 산위의 높은 곳에 위치하는 기존의 봉수대와는 달리 화성 성벽에 붙어서 벽돌로 완성된 봉돈과 동포루와 동일포루를 지나서 창룡문에 도착하니 창룡문의 바깥쪽은 개축 공사중이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소중한 문화재도 계속적인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창룡문을 지나서 국궁체험장과 동장대를 바라보면서 본기자가 수원화성이 완성된 것이 1796년인데 지은지 4년만에 정조가 세상을 떠났으니 참 안타깝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박영종 대표는 수원화성이 완성되고 그 파급효과가 생각보다 컸던 것이 정조의 타살설에 힘이 실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1790년대, 왕권이 강화되자 정조는 노론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노론측의 정치자금 공급원을 차단하고 빼앗게 되는 신해통공을 1791년에 시행하였고, 그 이듬해에는 수원화성을 축조하려는 구상을 구체화시켜 나갔습니다.

 

채제공, 이가환, 정약용 등 남인들의 원로중진소장을 포괄하는 핵심인물을 등용하면서 수원화성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수원화성의 규모가 다른 지역의 성에 비하면 크지 않은 것도 있어서 수원화성 건설을 지켜본 노론측이 자신들의 기득권과 정치적 기반이 와해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원화성으로의 천도를 정조가 진행하려고 하자 본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정조를 타살한 것이 아닌지 생각이 듭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의견입니다. 사실로 확정짓지는 말아 주세요.“라는 말을 했다.

 

 

사실 정조의 입장에서 수도 천도가 통치구상과 개혁이념을 본격적으로 구체화시킬 새로운 출발점이 되는 것이었지만, 수원화성이 완성되고 얼마 후 사망하는 것이 우리나라 역사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정조가 죽고 남인을 중심으로 한 시파세력을 신유사옥으로 제거한 노론 벽파가 정권을 장악하고 왕의 척족을 중심으로 한 세도정치라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정치행태를 낳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의 변화된 역사적사회적 조건과 결부된 개혁의 노력과 기회는 다시 한 번 반동적인 세도정치하에서 묵살되고 말았다.

 

이에 백성들은 전례없이 가혹한 가렴주구(세금을 가혹하게 거둬들여 국민을 괴롭힘)에 신음하게 되었고, 결국 그것은 빈번한 민란의 발생으로 귀결되어 갔던 것이다. 200여년의 세월이 흘러도 아직도 이 사회는 정조 사망의 결과가 가져오는 휴유증을 계속 겪고 있는 것이다.

 

 

계속 정조에 대한 안타까운 대화를 나누며 장안문 방향으로 나아갔다. 동암문에 이르러 밑부분을 보니 화성축조때의 밑돌이 보였다. 계속적인 화성에 대한 관리 보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방화수류정이 보이기 시작한다. 역시 수원화성의 하이라이트라는 별칭이 아깝지 않았다. 몇 번이고 자주 봐온 본기자의 눈에는 아직도 너무 아름답고 수원화성을 빛나게 해주는 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화수류정 위의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 아름다운 건축물 위에는 하늘도 땅도 이렇게 아름답구나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방화수류정에서 바라보는 주위 풍경과 하늘이 너무 아름다웠다.

 

 

 

 

 

 

 

방화수류정에서 내려다보는 연못의 건너편의 집들을 보니 그 집주인들이 순간 부러워졌다. 아 저 사람들은 정말 넓으며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생활하는구나 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에서 보는 풍경만이 아니라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 수원천의 흐르는 모습, 일반 생활모습도 기분좋게 다가왔다.

 

 

 

 

 

방화수류정에서 장안문을 향해 나가면서 성밖에서 수원화성을 바라보니 정교하고 깨끗하게 관리하는 성벽과 장안문을 바라보니 수원화성 관리당국과 시의 노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장안문을 수원화성 밖에서 바라보자 계속적인 관리로 수원화성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항상 깨끗하고 아름다운 장안문이 보였지만, 오히려 장안문 주위의 건물들이 더 오래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을 받기전까지 100여년의 세월을 방치에 가깝게 놓여지고 주위는 산업발전이라는 굴레에서 이전의 건축물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식 건물이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상권이 많이 안 좋아지고 비행문제로 인한 고도 제한에 걸려 새로운 건물을 세우기는 어려워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 장안문보다 그 주위의 건물들이 더 노후해 보이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장안문에서 화서문을 지나가고 또 서장대 정상을 향해 가면서 박영종 대표가 이야기를 했다. 서장대가 있는 정상까지 수원화성을 감상하고 혼자 만끽하고 싶으니 우리 대화를 잠시 멈추고 올라가는 것이 좋겠다고 얘기를 하니 오우 이런 면도 있구나. 존중해 주자라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서장대에 올랐다. 정조가 이곳에서 군사를 조련하고 정치력을 발휘하던 곳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화성행궁 광장과 여민각, 아이파크 미술관이 보이자 박영종대표는 상권이 없어진 팔달문과 그 주변을 위해 수원시의 노력과 지원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고 얘기했다.

 

 

 

 

서장대에서 서남암문으로 향하는 길 왼쪽에 펼쳐지는 소나무 숲에 박영종대표가 제일로 감탄을 한다. 예상밖의 반응에 본기자는 놀랬지만. 도심 속에 소나무 숲이 이렇게 건강하고 넓게 분포되어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수원화성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백미라고 한다.

 

 

 

정말 등잔밑이 어둡다고 하지만 항상 봐온 소나무 숲이 이렇게 외부인의 모습에는 굉장하고 대단하게 다가오는 것이구나. 다시 한번 수원화성을 바라보게 되고 기대하게 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러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서울쪽에 있는 북한산성도 거의 옛모습을 보이도록 재건축을 했지만, 등산을 하지 않으면 볼수 없다. 하지만 수원화성은 걸어서도, 관광열차로도, 승용차로도, 자전거로도 관람이 가능한 곳이다. 결국 나이에 상관없이 건강상태에 상관없이 누구나가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로데오 거리로 내려와 김치찌개로 저녁식사를 하고 로데오 거리의 빙수 맛집 카페애테에 들려서 빙수를 먹고 1시간 가까이 얘기를 나눴다. 박대표는 2016년부터 수원에 있는 여행사와 협력해서 전국의 문화유적지와 산 등을 유람하는 프로그램의 가이드로서 일을 한다고 한다. 오늘 이렇게 아름다운 수원화성을 보여 줘서 고맙다고 말을 하는데, 본기자도 좋은 기사를 쓸수 있게 되어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출발했던 수원 팔달문에서 사진을 찍고 서울가는 좌석버스 정류장으로 안내를 했다. 박영종 대표를 배웅을 하면서 주차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피곤하지만 가벼운 것은 오늘 또 수원화성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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