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에 먹을 야식거리를 구입하기 위해 생거진천 전통시장으로 향했다. 14.4㎞로 23분 정도 걸린단다. 꼬불꼬불 굽은 길로 달리다 뻥 뚫린 국도를 달린다. 초평교를 다시 건너와야 하지 않나? 걱정했는데 초평호 아래쪽이 아닌 위쪽 34번 도로에 들어서니 한 방에 걱정거리 날아가니까 가슴은 시원했고 두통은 깨끗이 사라졌다. 그런데 막상 전통시장에 들르니 5일, 10일이 장날이란다. 운수대통진천전통시장 안내지도에는 아쉽게도 장날 안내가 없었다.
장날은 아니어도 문 연 가게 한 곳쯤은 있겠지 했건만 야식거리를 구입할 상가는 없었다. 농협 하나로마트를 찾아가 튀김과자류와 맥주를 구입하고 김유신 생가로 향했다. 가다 보니 길상사? 그렇다면 김유신 생가터도 여기가 아닌가? (이번 진천여행의 해설을 맡은 내가 이상설 생가터로 착각하고 있었다) 내비게이션마저 이상한 숲속으로 가란다. 이상해 차를 세웠다.
안내표지판도 그렇고 내비게이션도 오른쪽 도로로 들어가라는데 이상하여 차를 멈추었다. 그리고 기와집 건물이 있어 가보니 사무실이란다. 하는 수 없이 오늘 여행을 여기서 종료하고 저녁 먹으러 가려던 <산골맛집>을 찾아보니 길 건너편에 있었다. 발 담그며 잠시 쉬었다 가려던 연곡계곡은 흙탕물로 거세게 달려나갔다.
사적 제414호 소재지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김유신길 170-4 일원
이곳 계양마을은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한 흥무대왕 김유신(595∼673)이 탄생하고 성장한 곳이다. 장군은 이 지역에서 태어나 15세 되던 609년(진평왕 31년)에 화랑이 되었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침입을 막아냈고,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었으며, 당나라의 세력을 몰아내 자주성을 지키는 데 공헌하였다. 신라 역사상 가장 높은 관등인 태대각간(태대서발한이라고도 함)을 지냈고, 흥덕왕 10년에는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봉되었으며, 고려시대까지는 국가에서 주관하여 봄과 가을로 제사를 올렸다. 탄생지 일대에는 당시 식수로 사용하였다는 연보정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단다.
태실은 태어날 때 나온 탯줄을 따로 보관하는 시설을 말한다. 김유신의 태실은 자연석으로 둥글게 기단을 쌓고 봉토를 마련하였으며 태령산 꼭대기를 따라 돌담을 산성처럼 쌓아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였다. 이 태실은 삼국사기와 역대의 지리지에 김유신의 태를 묻은 곳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지금 남아있는 태실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태실 축조의 형식을 가진 것으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지금의 계양(桂陽) 마을 입구에 장군터(태수 관저가 있던 곳)라 불리는 곳에 1983년에 유허비(遺墟碑)를 건립하였으며, 이곳에서 북동 방향 300m 지점에는 태수 관저에서 사용했다는 우물터 연보정(蓮寶井)이 현존하고 있으며 무술 연습과 말달리기를 했다고 전해오는 치마대와 태실은 해발 461.8m의 산정상에 원형으로 석축이 있고, 그 주위에 경사면을 에워싼 길이 216m, 높이 1-1.3m 규모의 석축이 산성처럼 드리워져 있으며, 우리나라 태실의 최고형식에 속하는 중요 유적이란다. 탐방하기엔 시간이 너무 늦어서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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