洙均의 생거진천 여행 3 생거진천전통시장과 김유신 장군 탄생지

정흥교 | 기사입력 2021/11/16 [17:51]

洙均의 생거진천 여행 3 생거진천전통시장과 김유신 장군 탄생지

정흥교 | 입력 : 2021/11/16 [17:51]

 


G. 생거진천 전통시장

 

밤중에 먹을 야식거리를 구입하기 위해 생거진천 전통시장으로 향했다. 14.423분 정도 걸린단다. 꼬불꼬불 굽은 길로 달리다 뻥 뚫린 국도를 달린다. 초평교를 다시 건너와야 하지 않나? 걱정했는데 초평호 아래쪽이 아닌 위쪽 34번 도로에 들어서니 한 방에 걱정거리 날아가니까 가슴은 시원했고 두통은 깨끗이 사라졌다. 그런데 막상 전통시장에 들르니 5, 10일이 장날이란다. 운수대통진천전통시장 안내지도에는 아쉽게도 장날 안내가 없었다.

 

 진천전통시장 방송국


H. 김유신 장군 탄생지

 

장날은 아니어도 문 연 가게 한 곳쯤은 있겠지 했건만 야식거리를 구입할 상가는 없었다. 농협 하나로마트를 찾아가 튀김과자류와 맥주를 구입하고 김유신 생가로 향했다. 가다 보니 길상사? 그렇다면 김유신 생가터도 여기가 아닌가? (이번 진천여행의 해설을 맡은 내가 이상설 생가터로 착각하고 있었다) 내비게이션마저 이상한 숲속으로 가란다. 이상해 차를 세웠다.

 

 화랑전 표식판 앞 김유신 장군 태실 연보정 국궁장

 

안내표지판도 그렇고 내비게이션도 오른쪽 도로로 들어가라는데 이상하여 차를 멈추었다그리고 기와집 건물이 있어 가보니 사무실이란다하는 수 없이 오늘 여행을 여기서 종료하고 저녁 먹으러 가려던 <산골맛집>을 찾아보니 길 건너편에 있었다발 담그며 잠시 쉬었다 가려던 연곡계곡은 흙탕물로 거세게 달려나갔다.

 

 당초 연곡계곡에서 발 담그고 쉬다 가려고 생각했다그런데 흙탕물이 거세다도로를 뛰던 물이 계곡으로 떨어지며 폭포를 이루고 있다.

 

 사무실(기껏 찾아간 곳은 김유신 생가가 아닌 관리사무실이었다.)

 

 산골맛집


저녁상 차리기 바쁜 주인장에게 김유신 생가터를 물어보니 개울 건너 기와집이라는데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차림표

 

 김유신 장군 탄생지 사무실 화장실 태권도 성지가 있다.


저녁상을 준비하는 동안 식당 맞은편 기념탑 쪽으로 가보았다. 화랑무예 태권도 성지로 세계태권도공원 유치를 염원하며 지난 2002년 김유신 장군 탄생지(사적 제414) 바로 옆에 세웠단다. 기념탑 뒤쪽이 태령산으로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김유신 장군의 태실이 있다. 한때 이곳에서 김유신 장군과 연관된 신라 달집태우기, 축구, 활쏘기, 연날리기 대회 등 전통놀이와 각종 문화공연 및 체험 행사로 투호, 말타기, 비석 치기, 제기차기, 떡메치기를 하였단다. 그러나 지금은 주차장 터가 아깝다. '화랑무예 태권도 성지' 기념탑도 무관심 속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화랑무예 태권도 성지(산골맛집 앞 차도에서 주차장 입구까지 159m)

 

 통합기준점 표지석(사진만 있으니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죠사방 50㎝ 정도)

 

 이곳이 위도 36도 50분 16.91초이고 경도 127도 22분 50.28표고 145.6m란다. 


산골맛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김유신 장군 탄생지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음식점 앞 차도에서 탄생지는 540m로 아주 가깝다.

 

 탄생지와 태실 안내도


안내게시판의 글이다.

사적 제414

소재지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김유신길 170-4 일원

 

이곳 계양마을은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한 흥무대왕 김유신(595673)이 탄생하고 성장한 곳이다. 장군은 이 지역에서 태어나 15세 되던 609(진평왕 31)에 화랑이 되었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침입을 막아냈고,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었으며, 당나라의 세력을 몰아내 자주성을 지키는 데 공헌하였다.

신라 역사상 가장 높은 관등인 태대각간(태대서발한이라고도 함)을 지냈고, 흥덕왕 10년에는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봉되었으며, 고려시대까지는 국가에서 주관하여 봄과 가을로 제사를 올렸다. 탄생지 일대에는 당시 식수로 사용하였다는 연보정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단다. 

 

태실은 태어날 때 나온 탯줄을 따로 보관하는 시설을 말한다. 김유신의 태실은 자연석으로 둥글게 기단을 쌓고 봉토를 마련하였으며 태령산 꼭대기를 따라 돌담을 산성처럼 쌓아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였다. 이 태실은 삼국사기와 역대의 지리지에 김유신의 태를 묻은 곳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지금 남아있는 태실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태실 축조의 형식을 가진 것으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지금의 계양(桂陽) 마을 입구에 장군터(태수 관저가 있던 곳)라 불리는 곳에 1983년에 유허비(遺墟碑)를 건립하였으며, 이곳에서 북동 방향 300m 지점에는 태수 관저에서 사용했다는 우물터 연보정(蓮寶井)이 현존하고 있으며 무술 연습과 말달리기를 했다고 전해오는 치마대와 태실은 해발 461.8m의 산정상에 원형으로 석축이 있고, 그 주위에 경사면을 에워싼 길이 216m, 높이 1-1.3m 규모의 석축이 산성처럼 드리워져 있으며, 우리나라 태실의 최고형식에 속하는 중요 유적이란다. 탐방하기엔 시간이 너무 늦어서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넘겼다.

 

 이곳이 바로 흥무대왕 김유신이 탄생한 곳으로 아버지 김서현 장군이 태수로 있던 집무실 근처에 큰 담을 쳤다고 해서 담안밭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생거진천의 명소로 알려진 이곳 김유신 장군 탄생지는 1988930일에 <김유신 장군 유허지>라는 이름으로 충청북도 기념물 제79호로 지정되었고, 김유신 장군 태실은 1997627일에 <김유신 태실 및 돌담>이라는 명칭으로 충청북도 기념물 제108호로 지정되었다가 1999611일에 이 둘을 합해 문화재 사적 제414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흥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옛터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로 육당 최남선 지음

 

 1983년 건립된 김유신 장군 흥무대왕 김유신 유허비(興武大王金庾信遺墟碑)

 

 김유신 장군 탄생지 건물? 1983년에 재실로 지은 건물인데 아무런 설명이 없다.


이제 내비게이션으로 주소를 확인하고 생거진천 자연휴양림으로 출발하는데 좌로 가라 우로 가라 맛이 갔다. 핸드폰 카카오를 연결했는데 두 대가 서로 싸운다. 10여분 보탑사가 있는 곳으로 향하다 차를 돌렸다. 이제야 2대가 사이좋게 안내를 한다. 출발하며 방향을 바로 잡지 못한 결과다. 휴양림 관리사무소에 가니, 그래도 오지 않아 기다렸단다. 다들 이미 왔는가 보다. 28분이면 올 수 있는 걸 50분이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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