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조령 마루
▲앞의 글에서 사진 <백두대간 조령 표지석> 아랫부분 글인데 충청도가 맞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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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해설 중 ▲는 2021년 사진, ♥는 2009년 7월 사진
조령은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로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조령 제3관문은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해 선조 초에 쌓고 숙종 초(숙종 34년)에 중수하였으며, 1976년에 복원하였다.
주춤주춤 일어서는 산과 이마를 맞댄 곳에서 우리는 고개와 만난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은 연풍새재를 넘는 인연들의 유일한 벗이다.
단양 죽령, 영동 추풍령과 함께 한반도 문화의 중심을 품에 안고서
드넓은 산천으로 내달리게 한 충북 제일의 고개가 바로 연풍새재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은 길을 따라 걷는다.
그 아름다운 꿈은 언제나 길에서 시작해서 길에서 갈무리된다.
더 넓은 대륙으로 더 푸른 태양으로 향하던 문명과 소통의 길,
세상의 중심으로 나서는 연풍새재길을 그대와 함께 걷고 싶다.
예부터 영남(嶺南)에서는 많은 선비가 청운(靑雲)의 뜻을 품고 과거를 보러 한양(漢陽)으로 갔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남쪽의 추풍령(秋風嶺)과 북쪽의 죽령(竹嶺), 그리고 가운데 새재(鳥嶺)가 있는데 영남의 선비들은 문경새재를 넘었다고 한다.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秋風落葉)과 같이 떨어지고 미끄러진다는 선비들의 금기가 있어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급제를 위하여 넘던 과거 길이다.
▲연풍새재 일출비 (해의 형상에 충북의 지도를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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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맵에서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경계(분홍색을 기준으로 왼쪽이 충청북도, 오른쪽이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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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그동안 조령관과 성벽이 도간 경계인 줄 알았다.
명칭에 충북이면 연풍새재가 맞고, 경북이면 문경새재다.
7. 제3관문-조령(鳥嶺)관 해발 650m
사진을 찍으면서 서 있는 곳도, 사진에 담긴 대부분 땅도 경상북도일 거다.
▲충청북도 쪽에는 조령문이었는데, 경상북도 쪽 현판에는 영남 제1관이라고 쓰여 있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새재는 해발 650m로 조령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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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쪽 조령관 앞에는 제초작업 중이다. 옛날이 아닌 몇 해 전 중고등 학생들의 빡빡머리가 떠오를 정도로 시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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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에서 흔히 보이는 잔디 깎는 기계도 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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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에선 산꼭대기 정상 측량결과로 경계가 바뀌었나 보다. 옛 흔적을 지우기 위해 새롭게 만들었는데, 산 정상이 사라졌다. 콧구멍만 남겨놓고 판을 깔아 겨우 숨만 깔딱거린다. 그런데 이곳은 평화롭다. 충청북도 쪽에는 아쉬움에 하나라도 더 조형물을 세우려고 고심했고, 경상북도 쪽은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다. 제1관문, 제2관문, 제3관문에 계곡의 명승지도 거의 차지했으니 부자의 여유인가?
참 제3관문인 조령관, 어디가 안쪽이고 어디가 바깥쪽인가?
8. 문경새재 ‘책바위’ 와 ‘이진터’
조령관에서 조곡관까지는 3.5㎞, 해발 650m에서 해발 380m로 내려간다. 황톳길을 내려가다 금의환향 길로 들어서면 조곡관 방향으로 500여m 떨어진 지점에 돌무더기가 있는데 ‘책바위’라 부른다. 돌무덤에 소원을 빌면 영험하다는 소문이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이 길을 찾던 이들의 간절함을 짐작할 수 있으며, 청운의 꿈을 안고 넘던 길이지만 낙방한 이들은 절망과 좌절 속에 다시 희망을 스스로 찾는다.
지금도 영험하다는 소문이 있어 가족의 건강과 자녀들의 성적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입시철에는 자녀의 합격을 염원하는 부모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아, 이 고개 험줌함은 견줄 곳 없고 嗟兹嶺之峻極兮
웅장한 경지는 동방의 제일이로세 擅雄勝於東域
드넓은 지역에 걸쳐 가로질러 있음이여 勢磅礴而橫亘兮
바람 기운조차 남북으로 갈라놓았지 隔風氣於南北
장유(1587-1638) 조선시대 좌부빈객,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참고자료 https://blog.naver.com/chuniltc/66048737
▲노거수 이해하기 - 이곳도 길가 곳곳에 문경새재 생태공원에 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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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원(桐華院)은 조령관인 제3관문에서 제2관문 방향으로 약 1.2㎞ 정도로 떨어진 아래에 있으며, 해발 523m이다. 조선시대 조령원과 함께 길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곳이다. 제3관문 바로 아래에 있는 새재의 마지막 마을로 산에 꽃이 많이 피어 화려하다 하여 동화원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단다. 동화원에서 조령관까지는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화전민이 많이 거주하였고 조령초등학교 분교가 있었던 곳이란다. 현재는 모두 떠나고 한 가구만이 이곳에서 여행객들을 상대로 산장을 운영하고 있다.
▲내 기억엔 없는데 사진이 멋지다. 자연이 나에게 선물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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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곡관 문을 지나 쉼터에서 땀을 식히고 조금 오르면 ‘문경새재 아리랑비’가 있고, 동화원이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모병군 8,000명을 이끌고 제1진은 제1관문 부근에 배치하고 제2진의 본부를 이곳에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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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평탄하고 나무가 우거져있어 선크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고사리주차장에서 문경주차장까지 한결같은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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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바위 인근 낙동강의 발원지 중 하나로 문경현 북쪽 초점(草蛅)이라 하는데 옛날이야기다. 발원지는 강 하구에서 가장 멀고 높은 곳에 있으며 연중 마르지 않고 물이 흐르는 곳으로 정의되기에 발원지는 아니다. 동화원부터 영남대로와 함께 문경새재 주차장까지 걷는 동안 맑고 깨끗한 물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가 계속 들려와 걷는 내내 기분이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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