洙均샘의 문경새재 여행 3 색시폭포에서 교귀정까지

정흥교 | 기사입력 2021/12/28 [21:23]

洙均샘의 문경새재 여행 3 색시폭포에서 교귀정까지

정흥교 | 입력 : 2021/12/28 [21:23]

 


문경새재에 다시 오르며

洙均 안희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더니

머리에서 뿌리까지 울퉁불둥 솟구쳤네

참혹한 코로나의 몰골 쓸쓸한 문경새재 

 

9. 색시폭포

 

 색시폭포는 2006년 1산악인들의 겨울철 입소문으로 감춰졌던 비경이 시민공모로 색시폭포라 이름표를 달고 당당히 나섰지만평상시에는 폭포라는 느낌조차 들지 않는다.

 

필자는 문경새재에 6번 다녀온 것 같다. 사진은 20097월에 촬영한 것(표시)과 이번 202110월에 촬영한 것(표시)만 이용했다. 

 

 문경새재 아리랑 비


문경새재 / 홍두깨 / 아리랑 / 아리랑

홍두깨 / 큰 아기 / 아리랑 / 아리랑

문경새재 / 굽이야 / 아리랑 / 아리랑

물박달 / 방망이로 / 아리랑 / 고개로

방망이 / 손질에 / 아리랑 / 고개로

넘어를 / 굽이야 / 아리랑 / 고개로

나무 / 다 나간다 / 아라리요 / 넘어간다

팔자 좋아 / 놀아난다 / 아라리요 / 넘어간다

갈 제 / 눈물 난다 / 아라리요 / 넘어간다

 

 문경새재 아리랑 판

 

 문경새재의 가을낙엽 이야기

 

 귀틀집 통나무를 장()자 모양으로 귀를 맞추고 쌓아 올려 벽을 만든 후 그 위에 너와·굴피·화피 등으로 지붕을 이은 건축물로 지방마다 다르다문경새재엔 1970년대 말까지 화전민의 집으로 주흘산 등산로변에 남아있었다고 한다.

 

 바위굴과 새재우 안내판

 

 바위굴과 새재우


문경새재 아리랑 비 근처 바위굴이 있는데, 옛날 갑작스러운 소낙비로 이 바위굴에서 만난 두 남녀가 깊은 인연을 맺고 헤어진 후 처녀가 아이를 낳자 아비 없는 자식이라 놀림이 심하므로 가출하여 아버지를 찾아 나섰고행복하게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10. 문경새재와 수학

 

 

  

해발 460m인 연풍면 고사리주차장에서 해발 650m인 조령관까지 거리는 2이다. 190m / 2,000m × 100 = 9.50% 5.5°(경사도)

해발 650m인 조령관에서 해발 380m인 조곡관까지의 거리는 3.5이다. 270m / 3,500m × 100 = 7.71%

해발 380m인 조곡관에서 해발 244m인 주홀관까지는 3.0이다. 136m / 3,000m × 100 = 4.53%

결국, tanx의 값이다. 따라서 삼각함수의 표를 살펴보면 비탈길의 각도 즉 경사도를 구할 수 있다.

 

서울 남산의 경우 평균 경사도가 6%이며, 구간 중 가장 심한 깔딱고개가 15~17% 정도이다. 일반 포장도로에선 경사도 한계를 13% 정도로 규정하는데, 일부 산악지역에선 17%까지 허용하기도 한다.

 

고사리주차장은 해발 430m이고 조령문은 해발 650m이다. 해발 높이는 220m 상승하지만 2.0를 걸었으니 도로의 기울기는 9.50%이고 경사각도는 약 5.5°이다. 그러나 우리는 제3관문 턱밑까지 승용차를 타고 올라왔기에 끝부분에서 힘들었다. 21번 숙소에 주차하고 올라왔으면 막판까지 쉬웠을 텐데. 인생은 쉬운 길은 많지만 아무나 그리 쉽게 풀리는 게 아니다. 물론 26번 숙소에서부터 올라왔기에 산림욕의 안내와 아름다운 카페집이 기다리고 있었다. 3관문을 지나면서 제1관문까지 내리막길이다. 조령문은 해발 650m이고 제2관문인 조곡관은 해발 380m3.5를 걸어왔는데 도로의 기울기로는 7.71%이고 경사각도는 약 이다. 

 

또한, 1관문까지 도로의 기울기로는 4.53%이고 경사각도는 약 이다. 점점 완만한 코스가 된 걸 수치로 비교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몸의 느낌도 모든 사람이 같은 것은 아니다. 

 

11. 2관문-조곡관(鳥谷關) 해발 380m

 

 2관문[조곡관]의 성문 중앙 좌측에서 투호 놀이(3관문 방향)

 

 영남 제2관문인 조곡관 해발 380m

 

 영남 제2관인 조곡관 천장

 

 영남 제2관문인 조곡관


조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당시 조선의 최정예 부대를 이끌던 신립 장군은 문경새재를 버리고 충주의 탄금대에 배수의 진을 친 후 대패하여 처참한 죽음을 맞았고, 왜군은 한양까지 직행하게 된다. 임진왜란 2년 후인 1594년 충주에 사는 신충원이 이곳에서 성을 쌓은 것이 시초가 되었으며 문경새재에 처음으로 관문과 성곽이 축성되었는데 지금의 제2관인 조곡관이다.
 

 

 조곡약수 대환영

 

 휴게소

 

 2관문 휴게소

 

 조곡폭포 너무 아름답죠이 폭포를 보자 쌍꺼풀이 갑자기 떠오른다.


계곡의 물소리와 새소리가 넘치던 곳

나그네 시름까지 날려주는 조곡폭포

인공도 세월이 쌓이면 그 또한 자연이리

 

洙均샘의 조곡폭포 시조 전문

 

 조령 산불됴심 표석


산불됴심 표석은 산불을 경계하기 위하여 세운 돌비석이다. 199087일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226호로 지정되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후 한말까지 세워진 비석 중 유일하게 한글로만 새겨진 비석이란다.
 

 

 교귀정


조선시대인 1470년초(성종초)부터 경상감사의 인수인계가 이루어지던 곳에 세워진 정자로 교귀정이라 부른다. 18963월 의병 전쟁 시 화재로 소실되었지만 이후 폐허로 터만 남아있던 것을 19996월에 복원하였다. 교귀정 앞에 소나무가 일품이다.
 

 

 교귀정 앞 소나무

 

 교귀정 앞 소나무 안내석

 

 


교귀정 바로 앞에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가 죽임을 당한 넓은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2022년 새해 인사

洙均 안희두 

 

22일이 동지라

일주일이 흘러갔다

해가 뜨는 아파트도

해가 지는 아파트도

하루에 한 발짝씩 쑥쑥

거침없는 붉은 해  

 

2022년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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