洙均샘의 문경새재 여행 4 응암폭포에서 탄금대까지

정흥교 | 기사입력 2022/01/04 [16:30]

洙均샘의 문경새재 여행 4 응암폭포에서 탄금대까지

정흥교 | 입력 : 2022/01/04 [16:30]

 


13. 응암(매바우)폭포
 

 

 응암(매바우폭포라 쓰여 있다뒤에 마치 풍경이 추상화를 보는 것 같다.

 

 

 

응암(매바우) 폭포는 물레 뒤쪽에 있다. 아니 바닥에 얼음인가? 나도 모르겠다.

 

문경새재 중간쯤에는 주막이 있는데 주모가 없다. 아무나 앉으면 주인이라는 무주바위를 지나 도로 좌측에 타원형으로 된 폭이 약5m, 4m인 마당바위가 있다. 

 

14. 그리고

 

 주막


고려, 조선시대에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였던 편의시설로 돌담으로 둘러싸인 조령원터가 있다. 주막촌이 일반 백성이 운영하는 주막이라면 조령원터는 출장 온 관리들을 위해서 나라에서 정해준 숙박 터이다. 전쟁 시에는 군막으로 사용했고 사각형 터에 긴 돌들로 튼튼하게 담을 둘렀으며 과거 한양과 영남을 이어주던 길목에 위치해 수많은 길손이 오고 가는 중요한 통로였다. 새재 내에는 동화원, 조령원, 신혜원 등 3개의 원터가 있었단다.
 

 

 휠체어를 타고 단풍 구경 아름다운 모습이죠.


왕건교를 건너가면 문경새재오픈세트장이 있는데 강 건너 불구경만 못 하다. 눈길 한번 없이 제1관문인 주흘관(244m)으로 왔고 거침없이 전동차를 타고 드라마세트장에서 주차장까지 1를 신나게 내려와 새로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
 

 

 해발 300m 지점

 

 나무 몰골이 나와 비슷하다돌밭에 태어났어도 뿌리는 튼튼하다.

 

 조령 원터 안내글

 

 조령원터

 

 가위바위보 준비와르르

 

 지름틀바위 

 

기름을 짜는 기름틀과 비슷해 지어진 이름이다필자는 악어바위라 부른다.

 

 바위가 이과수 폭포마냥 아름답다.

 

 1관문인 주흘관 해발 244m(2관 쪽에서)

 

 


국토교통부에서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에 선정되어 한해 100만 명 이상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 있는 길이다. 한양과 동래(지금의 부산)를 연결하는 영남대로의 중추로 좌로는 추풍령이, 우로는 죽령과 함께 낙동강과 한강을 잇는 가장 중요한 육로였다.
 

 

 드라마세트장 있는 곳에서 관리사무소 앞까지 1,000원짜리 전동차가 쉴 새 없이 다닌다.

 

 주차장 앞 상가


주차장까지 1를 오가는 전동차이다. 올라타며 문경에서 하루의 일정이 끝났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맛집 찾기도 귀찮다. 현지인의 조언을 받아 저녁 식사를 했는데 피곤함이 몰려오며 밥맛이 달아난다. 마트에서 오늘 밤에 마셔야 할 음료를 구하고 택시에 탑승했다. 조령산 자연휴양림까지 택시비 3만 원이다. 그런데 우리 차는 관리소를 지나 언덕으로 한참 올라갔다 내려와야 했다. 추가 요금으로 5,000원을 수고하셨다.’라며 건넸으나 3,000원만 받고 거슬러주었다. 그리고 택시 손님이 거의 없어 코로나로 기사들의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주흘관 앞에는 널따란 광장이 있어 문경사과축제도 이곳에서 한단다.

 

충청북도의 고사리주차장에서 출발해 무사히 문경새재 주차장까지 걸었다. 여행기를 쓰면서 몇 번 다녀갔다고 사진을 대충대충 찍었나 보다. 막상 글을 쓰며 선택한 사진은 추상화였다. 화면은 수선을 벗어나 춤을 추었다. 독자님들도 이해하시리라, 시니어의 아픔을.

 

 조령산 자연휴양림 숙소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보물 제97)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은 보물 제97호로 높이 3m. 높이 12m의 암벽에 세로 363, 가로 363의 감실을 파고 그 안에 나란히 앉아있는 불상 2구와 화불 등을 조각한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한 분으로 보이다가도 둘이 되고 손님도 오신 것 같다. 아침부터 굴착기를 동원해 작업을 하는 중이라 멀리서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 

 

 굴착기를 동원해 작업 중

 

 문 앞에 초인종도 보이지 않는다.

 

괴산 연풍성지는 1801년 신유교난 때 연풍 지역에 은거하고 있던 분들이 처형을 당한 곳으로 1974년에 천주교회에서 성역화한 곳이다. 이곳에는 한국 최초의 대주교인 노기남 대주교의 동상도 있으며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천주교 성지이기에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란다. 앞으로 40분을 넘게 기다려야 하기에 다음 장소로 향했다.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 장군은 적의 진로를 차단하는데 험준한 조령을 막지 않고 충청북도 충주 탄금대(彈琴臺)에서 왜병과 맞서 싸우다가 패하고 말았다. 그 뒤 조정에서는 이 실책을 크게 후회하여 조령에 관문을 설치할 것을 꾸준히 논의해오다가 숙종 때 비로소 3개의 관문을 설치하였다.

 

1관문은 성벽에 홍예문을 열고, 위에는 총안(銃眼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이 있는 성가퀴가 설비되어 있으며, 문루에는 嶺南第一樓(영남제일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 제1관문은 3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문이다. 2, 3관문은 성벽만 남겨놓은 채 홍예문이 사라진 것을 19741977년의 문화재 보수 때 복원하여 옛 모습을 다시 찾게 되었다.

 

 탄금정


고려 말 공민왕이 거란의 난을 피하였을 때 행궁이 있었다는 어유동(御由洞) 등 사적지가 조령계곡에는 여궁폭포(女宮瀑布), 쌍룡폭포, 팔왕폭포 등이 울창한 산림과 더불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다.

 

문경관문은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려 태조가 경주를 순행 차 고사갈이성을 지날 때, 성주 흥달이 세 아들을 차례로 보내어 귀순하였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관문은 영남지방과 서울 간의 관문이저 또한 군사적 요새지로서, 삼국시대에는 이보다 동쪽의 하늘재가 중요한 곳이었는데, 고려 초부터는 이곳 초참을 혹은 새재라고 하므로 조령이라 이름하고,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하였다. 조선 선조 25(1592) 임진왜란 때 조정에서는 이곳을 지킬 것으로 생각했지만, 신립 장군은 때가 늦었으므로 충주로 후퇴하였다.

 

그 후 충주에서 일어난 의병장 신충원이 오늘날의 제2관문에 성을 쌓고 교통을 차단하며 왜병을 기습하였다. 이런 일로 인하여 이곳의 군사적 중요성이 재확인되자 군사시설을 서둘러 숙종 34(1708)에 이르러서야 3중의 관문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15. 탄금대

 

 남한강과 충주강

 

 열두대 위에서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한 대문산(108m)의 정상은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우륵은 이곳의 풍치를 탐미하여 산 정상에 있는 너럭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탔다. 이곳이 바로 우륵이 금()을 탄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탄금대(彈琴臺)’.
 

 

16. 신립 장군

 

조선 중기 시대의 대표적 무장으로 꼽히는 이가 신립이다. 임진왜란 전까지 신립은 두만강 유역에서 여진족과의 전투로 전설적인 명장으로 칭송받으며 혜성처럼 나타났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정부는 즉시 신립을 경상, 전라, 충청도 병력을 총괄하는 삼도 순변사로 임명했다. 신임 사령관은 단 한 번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 군대를 지휘할뿐더러, 이 군대들은 전술훈련이나 기동훈련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상태다.

 

신립은 험준한 조령에 진을 치자는 부장들의 건의를 무시하고 충주 벌판(탄금대)에 진을 쳤다. 조령에 진을 쳤다고 해도 당시 신립의 군대가 왜군을 막아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요새화돼 있던 부산성도 단 반나절 만에 떨어졌다. 그렇다고 해도 강한 적을 상대하면서 벌판에서 정면 대결을 펼쳐 전멸해버린다는 것은 확실히 의문스러운 전략이다.

 

 위쪽 타원 부근에 조선군이아래 타원에 왜군이 주둔했다.


신립은 탄금대 전투에서 패전으로 국가적 영웅에서 하루아침에 무능한 장군으로 전락했다. 그를 비난하는 이유로 가장 크게 꼽히는 것이 탄금대에서 패전으로 430여 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비난이 빗발친다.

탄금대 전투의 교훈은 첫째, 준비 안 된 군대는 성공할 수 없다며, 둘째는 무기의 현대화와 훈련, 전술이 적의 정예부대 이상의 수준에 맞춰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경새재에서 원균과 신립을 떠올리며 

 

원균은 이순신과 연합으로 연승 행진

왜놈과 전쟁은 안방에서 소꿉놀이

칠전량 줄행랑 치며 예사로운 자침술(自沈術)

 

신립은 상방검에 주어모은 오합지졸

충주로 가면서도 훈련할 시간 없다

낯설은 계곡에 전개하느냐 사생결단 배수진

 

물길 따라 문경새재 바람 소리 새소리

계곡은 깊어지고 바위는 소매 걷고

세월이 흘러갈수록 천혜절경 다듬질

 

洙均샘의 문경새재 여행은 이번 4회로 마감하고 서울국립현충원으로 아동합니다.

 

시간 되시면

2014113일 발표한 수필 <로 걷다 에 취해 넘는 문경새재 1

(http://swinews.com/sub_read.html?uid=11246

20141117일 발표한 수필 <로 걷다 에 취해 넘는 문경새재 2

(http://swinews.com/sub_read.html?uid=11463 

도 다녀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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