洙均샘의 국립서울현충원 1. 지구를 돌아 이제야 현충원을 참배합니다

정흥교 | 기사입력 2022/01/12 [14:50]

洙均샘의 국립서울현충원 1. 지구를 돌아 이제야 현충원을 참배합니다

정흥교 | 입력 : 2022/01/12 [14:50]

 


1. 알링턴 국립묘지

 

2010년 미국 동부를 여행하며 워싱턴에서 알링턴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케네디의 묘와 미군의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도 다녀왔다. 그런데도 정작 대한민국 국립묘지는 참배하지 못해 죄를 지은 느낌이었다. 올림픽대로를 승용차를 몰고 지나갈 때나 지하철을 이용해 현충원 근처를 지나갈 때 바쁜 척 외면했던 내가 미웠다. 광주 망월동에 있는 국립 518 민주묘지는 20171215일에 다녀왔다.

 

 알링턴 국립묘지 무명 용사의 묘

 

  존 F. 케네디 묘로 정중앙에 영원한 불꽃(Eternal Flame)이 있다.


케네디 묘를 참배하며

洙均 안희두 

 

알링턴 국립묘지 무명용사 묘

참배하고 돌아가던 길

알링턴하우스 언덕 아래

잠시 쉬다

이곳에 잠든 영혼 참 편한 것 같다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가

미국의 자존심으로

미국의 영원한 불꽃으로(Eternal Flame)

자리 잡은 당신의 묘 앞에

다시 떠 올립니다

당신의 대통령 취임 연설문 일부를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당신이 꿈꾸는 위대한 미래

인류의 아름다운 미래

편안하십니까?

 

안희두 제7시집에 수록 / 알링턴 국립묘지의 알링턴하우스 언덕 아래 존 F. 케네디(1917 - 1963. 11. 22)의 묘가 아내와 함께 있다. 바로 위에 원형의 돌 중앙에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오른쪽으로 내려오면 십자가와 함께 로버트 F. 케네디(1925 - 1968)와 에드워드 M. 케네디(1932 - 2009)의 묘가 있다. 케네디는 저격 한 달 전인 1027일 로버트 프로스트를 추모하는 연설에서 꿈꾸는 미국의 미래를 제시했다.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엔 역대 미국 대통령 44명 중 제27대 윌리엄 태프트(육군 장관으로 재직하던 때 일본의 가쓰라 다로와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맺은 당사자)와 제35대 존 F. 케네디 단 두 명만 안장돼 있다는 사실에서 보듯이 미국에는 묘지정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이나 미국 등에서는 장군과 사병의 무덤 크기가 4.95(1.5)로 같으며 미국은 장군과 병사들의 무덤도 섞여 묻혀있다. 알링턴 국립묘지는 1864년 남북전쟁의 전사자 및 전몰장병들을 위한 시설로 시작했으나, 이후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등의 전사자와 테러 희생자 등 미국을 위해 산화한 영령들의 묘지가 되었다. 

 

2. 국립518민주묘지

 

 518민중항쟁추모탑(2017.12.15. 참배)

 

탑신 : 40m로 두 개의 대칭되는 사각기둥 모습인 탑신의 골격은 우리나라 전통 석조물인 당간지주(幢竿支柱) 형태를 형상화한 것으로 추모의 염원을 상징한다.

난형환조(卵形丸彫) : 손 모양 내부의 설치물. 태양광에 반사되는 빛은 구천을 떠도는 혼백이며,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는 희망의 씨앗이다.

부조(浮彫) : 청동부조의 제목은 <5월 민중항쟁도>이며, 당시의 항쟁을 일지(日誌)식으로 전개 묘사했다.

탑명 및 헌시 : 오석원판을 이용, 추모탑의 양측에 설치하였으며, 탑명은 전남대학교 송기숙 교수의 원작을 서예가 김승남씨가, 헌시는 김준태 시인의 원작을 정광주 서예가가 썼다.

불이의 문 : 탑 중앙을 관통하는 문으로 과거와 현재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는 통로라는 뜻과 오월영령과 우리가 만나는 일치의 문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단다.

 

 묘역


199911월에 오석원판을 이용하여 탑명과 헌시를 추가 설치하였다.
 

 

 송기숙 교수의 탑명 (오석판에는 1997년 5월 18일로 적혀있다.)

 

 김준태 시인의 <아아 광주여!> 헌시(1980년 6월 2일 아침에 쓰다.)


3. 국립서울현충원 정문

 

2021102일 고교 친구들이 국립현충원 주변을 등산할 때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내가 친구들과 보조를 맞추지도 못하고 지역도 다녀본 적이 없는 낯선 곳이라 설령 등산을 도중에 포기하면 친구들에게 누를 끼칠 것 같아 포기했다. 대신 10월 안에 국립현충원을 찾아가기로 아내와 약속했다. 20211022일 아침 7시경 집에서 나와 M버스를 타고 서울에 와 논현역에서 9호선으로 갈아타고 현충원역에서 내렸다. 8번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와 어디로 가야 하나 망설이며 주변을 살펴보니 바로 코앞이었다. 850분이다. 집에서 2시간만에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하는데 50년은 넘게 걸린 것 같다.

 

 국립서울현충원


당초 국립서울현충원은 1022일 한 번 다녀오는 계획이었다. 참배 길은 일반통행로를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올라가 네 분의 대통령과 창빈 안씨 묘소를 참배하고 현충탑과 유품전시관, 호국전시관을 둘러볼 예정이었다.
 

 

4. 엊그제 같은데 박정희 대통령 서거 42주기라니

 

 


앞서 1022, 플랭카드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없었던 것으로 판단) 이후에 다시 찾아간 1126, 아직 붙어 있다는 게 고마웠다. 19791026이면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했을 때다. 청주의 한 사찰에서 법정 스님을 초청해 시국강연(유신 타파)을 들었고, 청년부 신도들은 철야 법회에 참석했다. 다음날 아침 집으로 가는 길, 길거리에 스피커로 박정희 대통령 유고소식이 흘러나왔지만 유고가 무엇을 뜻하는지 처음엔 몰랐었다. 
 

 

5. 국립묘지 역사는 국민이 써야 한다.

 

국립묘지 여행기를 쓰면서 역대 대통령만 찾아뵙는 여행기는 수균(洙均 ; 필자의 호)의 인생관과 정면 대치된다. 깜빡한 것을 깨닫고 2차로 1126일 다시 현충원을 찾았다. 그렇다고 글쓰기에 모든 여건이 갖추어진 건 아니다. 달마사와 동작대, 서달산도 가야 하나? 공사 중으로 닫혀있는 유품전시관도 다시 입장이 가능해지면 가봐야 하는데 고민이다. 적어놓고 하나하나 찾아갔어도 놓친 게 하나둘이 아니었다. 

 

6-1 충성분수대

 

 충성분수대 1


충성분수대는 국가의 자유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밑거름이 된 영령들의 위훈과 그 정신을 상징하여 1976115일 건립했다. 이 분수대는 높이 13m, 원형 지름 31.2m60개의 노즐로 구성되어 있다. 충성분수대 하단에는 두 마리의 청룡 동상이 조각되어 있단다.
 

 

 충성분수대 2


현충원 정문에 들어서면자마자 충성분수대와 마주하게 된다. 정문에 들어서면 분수대와 드넓은 잔디광장이 널찍하게 펼쳐진다. 여기가 명당이구나! 국립서울현충원 규모는 크기가 여의도의 절반으로 자그마치 축구장 200여 개가 들어가는 44만 평에 이른다.
 

 

 충성분수대에서 겨레 얼 마당을 건너뛰어 현충문과 현충탑 방향에 있는 꽃시계(해시계가 아니다.)


6-2 충성분수대의 상징물

 

국가를 지켜낸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기리기 위해 1971년 준공식 후 시민들에게 공개된 야외조형물이다. 화강암 원형 수조를 이해하기 쉽게 상하단으로 구분해서 적어보면 상단에는 태극기를 받쳐 들고 한 손으로 횃불과 월계수를 들고 있는 남녀상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국가를 상징한단다. 중단의 남녀노소상은 국가의 발전과 번영을 위하여 노력하며 애국애족하는 국민을 상징하고, 중단의 아랫부분은 육공군해병대예비군 등 6인의 동상으로 이루어져 국가와 국민의 수호에 충성을 바친 호국영령들의 위훈과 정신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하단에는 승천하는 두 마리 청룡상을 청동으로 조각하여 조성하였단다

 

충성분수대에 아쉬운 점은 가까이 다가가 내려다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분수대 반지름을 5m 정도 늘려 안전펜스를 설치하여 관람객이 좀 더 가까이에서 안전하게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충성분수대 3


7. 국립서울현충원의 원주인은 창빈 안씨?

 

국립서울현충원이 자리한 이곳은 조선시대 창빈 안씨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즉 국립서울현충원의 원주인은 창빈 안씨(1499~1549)인 셈이다. 창빈 안씨는 궁녀 출신으로 중종 임금(조선 11대 왕)의 후궁이 되었다. 슬하에 영양군과 덕흥대원군, 정신옹주 등 21녀를 두었다. 창빈 안씨의 둘째 아들 덕흥대원군은 선조의 부친이다. 즉 창빈 안씨는 선조의 할머니이며, 선조의 할머니 묘소가 국립서울현충원 김대중 대통령 묘소 가까이 자리해 있다.

 

선조(덕흥대원군의 3)는 후손이 없는 명종(13)에 이어 14대 왕위에 오른다. 선조 이후의 모든 조선 국왕은 창빈 안씨의 DNA를 물려받았으니 창빈 안씨는 사후에 큰 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창빈 안씨의 자손도 번성해 1천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 묘소와 창빈 안씨 묘소 안내도

 

 창빈 안씨(昌嬪安氏, 14991549) 묘역

 

묘소는 원래 경기도 양주시 장흥리에 있었으나, 장소가 좋지 않다고 하여 1550년 과천의 동작리(현재 서울특별시 동작동 국립묘지)로 이장하였다. 국립묘지 내에 있는 창빈 안씨 묘소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4호로 지정되었다. 묘역에 서면 바로 아래에 한강이 흐르고 멀리 남산과 북악을 넘어 북한산이 바라보이는 공작포란형의 명당자리란다.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능침 앞으로 묘비와 장명등이, 좌우로는 망주석과 문무석인이 자리하고 있다. 전체 높이는 312, 비신 높이 204, 63.5, 지붕틀 높이 70의 정사각형이다. 조선시대 여성의 묘에 신도비가 있는 묘는 창빈 안씨와 명나라 황제가 내렸다는 한확의 부인 남양 홍씨의 묘 두 곳뿐이란다. 창빈 안씨의 묘는 현재 서울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창빈 안씨 묘소로 가는 길가에 신도비가 보인다.


실제 창빈이 묻힌 동작릉은 풍수적으로 좋은 땅일까? 이장을 한지 2년 후인 1552년에 선조가 태어났고 명종의 후사로 선조가 왕위에 오르니 죽어서 손자가 왕이 되어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아니, 이때부터 조선은 정비 소생의 적손이 욍위를 이어가는 맥이 끊기고 선조 이후의 왕은 창빈 안씨의 혈손이 계승되었다.

 

이승만대통령과 김대중대통령 사이에 누워 있는 창빈 안씨, 왕을 낳고 왕 (대통령)들이 쉬는 곳 명당 중 최고 명당이 바로 서울 현충원 (顯忠院) 창빈 안씨(昌嬪 安氏) 묘역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https://blog.naver.com/vvd1950/222563587012 인용,


명당 중 최고명당 바로 서울 현충원 (顯忠院) 창빈안씨(昌嬪安氏) 묘역입니다.
 

 

8. 분주했던 202211일 국립서울현충원

 

올해 11일 오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김부겸 국무총리 등과 함께 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에 헌화·분향한 뒤 묵념했다. 그리고 오세훈 서울시장의 현충원 방문에는 조인동 행정1부시장, 류훈 행정2부시장, 김도식 정무부시장을 비롯한 서울시 간부 총 11명이 함께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이준석 대표 등이 1일 오전 참배했으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송영길 대표 등 당 지도부와 함께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했다.

 

(국립서울현충원 홈페이지와 안내 자료 참고, 이하 자료도 개인적인 생각이나 느낌을 제외하고는 국립서울현충원과 인터넷 자료를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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