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과 장수왕릉 (안희두 백두산 여행기 6)

정흥교 | 기사입력 2019/11/21 [09:03]

광개토대왕과 장수왕릉 (안희두 백두산 여행기 6)

정흥교 | 입력 : 2019/11/21 [09:03]

 

 

[수원인터넷뉴스] 백두산의 새맑은 천지, 새파란 하늘이 풍덩 빠지고 구름도 덩달아 뛰노는 천지를 보고 모처럼 걱정거리 없이 편안한 잠을 잤다. 오늘은 집안을 들러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유적을 둘러보고 압록강변을 달려 첫날 묵었던 단동의 호텔로 돌아간다. 이제 내일 새벽 450분경 도시락을 들고 호텔을 출발해 대련으로 달려가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일만 남은 것 같다.

 

 집안에 북한이 운영하는 묘향산 식당

 

새벽 530에 모닝콜, 6시 식사, 7시에 호텔을 출발했다. 통화를 떠나면 관광쇼핑을 할 곳이 적당하지 않다고 새벽부터 곧바로 라텍스 대신 보이차 전문점에 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저렴하게 필요한 보이차를 샀다. 두 번째로 대나무 섬유 제품을 파는 마트에 들어가 다양하게 생활물품을 샀다. 국내 모 회사에서 대나무 섬유를 먼저 개발했는데, 채산성이 맞지 않아 포기한 기술이라는 가이드의 말에 아쉬웠다.

  

 푸짐한 상차림 / 식사 후에 냉면 제공

    

1030분이 되어서야 집안으로 출발했는데, 3번이나 검문을 받았다. 관광버스에 블랙박스가 있어서 동영상을 녹화한 파일을 당국에 제출도 한단다. 국내성에 거의 다 왔을 무렵 오녀봉이 있어서 졸본성(오녀산성)과 무슨 관계인가 물어보았다. 옛날 고구려 때 필요한 돌을 캐내던 채석장이었다. 백두산 지맥으로 소녀를 떠올리게 하는 국립산림공원이란다. 곧바로 분지 형태인 집안이 내려다보였다. 달리는 차 안에서 몇 장 사진을 찍었으나 풍경을 잡을 수 없었다.

 

 북한 무용수와 함께

  

12시가 넘어 관광버스는 드디어 북한이 직접 운영하는 묘향산 식당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곧바로 공연이 시작되기에 자리를 잡았다. 점심을 먹으며 30여 분 공연을 하는 데 사진을 찍거나 녹음, 동영상 촬영을 하면 곧바로 공연을 취소한단다. 가수들은 식당 안을 돌아다니며 노래도 부르고 꽃다발은 받아다가 앞의 공연장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면 개별 촬영에도 기꺼이 응했다. 나도 한 방 사진기에 담았다. 한식 식사 후 마지막에 평양냉면을 제공하는데 아쉬울 정도로 맛있었다. 식당 앞에는 신식 아파트와 고구려 때 국내성이 마치 놀이터 담장처럼 뒤엉켜 있는데 없애지 않고 조금이라도 남겼으니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나?

 

 플래카드와 아파트 사이 돌담이 국내성 흔적이란다.

 

집안시(集安市) 중심지에서 동쪽으로 4떨어진 언덕에 고구려 계단돌방돌무지무덤(階段石室積石塚)으로, 우산하 고분군에서 가장 규모가 큰 광개토대왕릉이 있으며, 동북쪽 300m에 광개토대왕릉비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동북쪽으로 1.3를 가면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의 능인 장군총이 나온다.

 

 장수왕릉인 장군총 앞에서

 

 1994년도에 왔을 때는 철계단을 밟고 올라갔었고, 2010년에는 출입구가 잠겨있었다. 이번에 가 보니 철계단이 철거되어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장수왕릉의 안내 게시판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본다.

번호JYM0001은 고구려 중말기의 왕릉이고 일명 장군총이라 불린다. 방형 계단식 능묘는 길이가 31.58m, 높이가 13.1m이다. 계단은 7개이고 22층의 돌로 쌓여있으며 주위에는 11개의 거석이 있다. 묘도구는 5급단계의 중심지에 위치하여 있고 두 개의 석관이 있다. 묘실은 거석으로 붕개되었고 주변은 석조와 등거리의 원형 구명으로 구성되었다. 이곳에서 연꽃무늬와당, 불완전한 기왓장, 쇠사슬 등이 발견되었고 묘 위에 건축물이 있으며 능묘의 북쪽은 동반 무덤과 제단이 있다.

 

 장수왕릉 배총(陪塚, 딸린무덤)

  

배총 앞 안내 게시판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본다.

장수왕릉1호동반 무덤

번호JYM002이고 고구려왕족의 묘지이며 장군총의 계단을 방불케 한다. 계단식 묘실이고 규모가 작으며 주위에 무덤을 보호하는 돌이 없다. 위쪽은 돌무덤이고 높이는 4.72m이다. 바깥쪽에 계단이 있고 1계단의 길이는 9.22m이며 묘실은 3개의 거석으로 둘러싸여 있다. 가장 꼭대기에 거석이 있고 묘실 문은 큰 돌로 봉쇄되었으며 묘실 밖은 조각돌로 깔려있다. 이러한 복고식은 고구려 묘지제도의 다양성을 재현하고 있다.

 

발걸음을 돌려 광개토대왕비와 능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광개토대왕비는 비각 안에 있으며 오른쪽에 출입구가 있다.


414년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이 아버지의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세운 광개토대왕비는 높이 6.4m, 너비 1.4~2.0m이고, 측면은 1.4~1.5m, 무게는 37t으로 한국에서 가장 큰 비석이다. 광개토대왕은 18세에 고구려 제19대 왕에 등극하여(재위 기간 391~413) 22년 동안 재위하면서 동북아에서 가장 강성하고 안정된 국가가 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었다.

 

 광개토대왕 릉

      

광개토대왕비

안희두

     

간도랄까?

만주랄까?

여행을 하면서

가도가도 끝이 없는

낯설지 않은 광활한 평원을 보며

가슴이 아프다

 

영토를 잃으니

역사도 잃고

자칫 전설로 숨었을지도 모를 광개토왕대비

타임캡슐로

옛날을 노래한다

 

 

 

한 자

한 자

직접 짚어가며

벅찬 가슴 더듬진 못해도

보는 것만으로도

두 손 모아 돌고 돌며

절을 올린다

 

대왕의 능에 올라

한 바퀴 돌아본다

인적이 끊긴 채

동화 속의 만포를 바라보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2010년에 쓴 작품이다. 비각 안에 들어가 세 바퀴를 돌며 타국땅이지만 잘 보존되어 우리의 기상을 세계만방에 떨치길 기원했다. 그리고 왕릉으로 향했다.

 

 광개토대왕릉의 상단부에 올랐다. 이렇게 왕릉을 밟고 올라와도 되나? 석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2010년 사진인데 안에 무언가 보인다.

  

광개토대왕릉의 안내 게시판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본다

 

태왕릉

번호JYM0541은 고구려 제19대왕 호태비의 왕릉이다. 호태왕(374-412) 이름은 담덕이고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능묘의 계단은 돌무지로 쌓인 묘실이며 고분의 높이는 14m이다. 현재 고분의 동쪽 길이는 62.5m, 북쪽 길이는 68m, 서쪽 길이는 66m, 남쪽 길이는 63m이다. 계단8, 21층으로 되어있고 아래는 거대한 무덤들이 있다. 묘실은 8계단에 있고 무덤길은 서쪽방향으로 되어있다. 묘실은 두 언덕물의 가옥 형상으로 나타내는 석곽이고 두 개의 석관상이 있다. 묘역에는 많은 조약돌이 깔려있고 동쪽에는 제단이 있다. 이곳에서 대량의 기와, 연꽃무늬와당, 그리고 <태왕릉이 산악처럼 견고하고 영원하기를 원한다>라고 쓰인 문자 벽돌을 발굴하였다.

 

 광개토대왕릉에서 북한쪽을 배경으로

 

 광개토대왕릉 돌무더기

 

오후 230분경 광개토대왕릉 주차장에서 단동을 향해 출발했다. 2010년 이곳을 찾았을 때 고구려 고분군과 오효묘가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아쉬움은 더 많이 찾아드는 것 같다. 압록강변을 달리며 마주치는 북한땅, 해가 저물며 풍경도 암흑속으로 잠들었다.

 

 1만여 기의 고구려 고분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고구려 벽화 오회분 5호묘

 

 

오후 7시경 압록강변 단동 식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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