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 정의였고, 신뢰가 정의인 스위스 용병 (안희두 스위스 여행기 1.)

정흥교 | 기사입력 2019/11/28 [12:07]

약속이 정의였고, 신뢰가 정의인 스위스 용병 (안희두 스위스 여행기 1.)

정흥교 | 입력 : 2019/11/28 [12:07]

 

 

[수원인터넷뉴스] 89일짜리 미소국(바티칸시국, 산마리노)과 이탈리아 일주(청색 노선)여행을 계획했다가 한 팀이 취소하는 여파로 출발 자체가 무산되었다. 스위스와 이탈리아 일주(적색 노선)로 갑작스럽게 변경하여 하루 앞당겨 출발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큰 차이점은 인천에서 로마로 직항과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경유다. 아쉽지만 갑자기 다른 곳으로 바꾸기도 어려워 일단 떠나보기로 했다.

 

변경된 여행 일정은 116일 출발해 스위스에 입국해서 취리히 루체른 인터라켄 체르마트를 거쳤다. 그리고 이탈리아로 국경선을 넘어가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폼페이 소렌토 - 카프리섬을 구경하고 나폴리에서 다시 로마로 돌아와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 1114일 귀국하는 노선이었다.

    

 

    

116일 오전 9시경 집을 나서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 도착했다. 1130분경 인솔 가이드를 만나 여행 관련 물품을 받았다. 점심을 먹고 체크인을 기다리며 여행자료를 읽어보았다. 10여 일간 여행자료를 만들며 행복했던 순간들이 스쳐간다. 출국장인데 방치되고 있는 별개의 여행 가방이 2개나 되어 공항보안대가 출동해 주변을 통제하고 있었다. 출국하며 정신 줄을 놓은 사람들이 있어 탑승 전부터 엉뚱한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것 같다.

 

 인천대교 풍경, 이번 여행길로 날씨가 이만하기를

    

출국 수속을 한가롭게 마치고 게이트에서 준비한 자료를 읽어보다 30여 분 낮잠에 빠졌다. 우리가 환승하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이리저리 재빨리 뛰어다닌 기억만 떠오른다. 비행기는 정시에 출발해 11시간 30분 만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환승장으로 가는데 역시 보안검사와 입국심사에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그리곤 빠른 걸음으로 게이트로 이동했는데, 탑승해 보니 우리가 마지막이었다. 1시간 정도 날아가 스위스 취리히에 착륙하여 호텔에 도착하니 현지 시각으로 밤 1120(한국 시각 오전 720)이나 되었다.

 

 인천공항에서 타고 갈 독일항공

 

 스위스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을까

      

영세중립국으로 전쟁을 이용해서?

고급 스위스제 시계를 팔아서?

음흉산 비밀금고 덕분에?

맥가이버칼도 한몫했지요!

스위스 치즈도 있고

 

모두 맞지만

도망갈 퇴로를 열어줘도

우리가 아닌 후손을 걱정하며

약속이 정의이고, 신뢰가 정의라며

전몰한 용병이 있었기에

사자는 부활했지요

충성심으로 가득찬 용사로

믿음의 화신으로

가랑잎이 아닌 유럽의 심장으로 

 

 유럽의 심장이며 무장중립국인 스위스

    

비행기에서도 잠을 잤지만, 시차 적응을 위해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630분에 모닝콜, 730분 아침 식사, 830분에 루체른으로 출발했다. 스위스는 영세중립국이라 배웠다. 현존하는 영세중립국으로는 스위스, 오스트리아, 라오스의 3개국이다. 스위스는 1815년 이후 항상 중립을 유지해 왔다. 국제연합 UN에는 2002년 회원국이 되었고, 유럽연합(EU)에는 현재 가입을 하지 않고 있다.

 

 바티칸시국을 지키는 스위스 병사

    

유럽의 심장처럼 생긴 스위스는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82,950$이란다. 어떻게 잘 사는 나라가 되었을까? 고급 시계 팔아서? 비밀 은행 덕분에? 그건 정답 중의 일부분일 뿐이란다.

 

가이드는 스위스는 무장중립국이란다. 총병력은 1990년대 말까지 현역 30, 예비군 30만 명이었는데, 현재에도 현역 12만에다가 즉시 동원이 가능한 예비군이 약 10만 명 정도란다. 거기에다가 최강의 최신예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 인구 800, 남한의 반 정도 되는 작은 국토에 잠재적인 적국도 없는 나라가 이렇게 많은 군비를 갖추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1870년 보불전쟁 당시 파리가 독일에 포위되자 프랑스는 스위스를 통과하여 독일의 배후를 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스위스는 국경을 넘어오면 다리와 터널 등 각종 시설을 다 파괴하면서 게릴라전으로 끝까지 통과를 저지하겠다며 중립을 지켜냈다고 한다.

 

 빈사의 사자상

 

빈사(瀕死)의 사자상(獅子像), 참 쓸쓸하다 못해 썰렁했다. 미국의 어느 작가는 세계에서 가장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극찬하였다는데, 빈사(瀕死)? 차라리 루체른의 사자 Lion of Luzern’가 훨씬 좋다. 1792810일 파리의 튀를리 궁전을 수호하다 전멸한 786명의 스위스의 용병들을 추도하는 작품이란다.

당시 프랑스 수비대는 모두 도망갔고 스위스 용병들만 남자 퇴각할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아직 계약기간이 남았다고 프랑스 혁명군의 제의를 거절하면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단다. 우리가 지금 도망가면 목숨은 건지지만, 우리의 후손들은 어느 나라에서도 용병으로 고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빈사의 사자상 위치 안내 지도

 

옛날 생활고에 시달리던 시절에 높은 임금 때문에 용병으로 지원하는 국민이 많았고, 용맹함이 널리 알려져 현재 바티칸을 지키는 근위병도 스위스의 출신이란다. 조상의 목숨값으로 일어난 나라가 바로 스위스라고 가이드는 강조했다. 그들에게는 돈에 의해 움직이는 용병이 아닌 약속이 정의였고, 신뢰가 정의이며 충성심으로 움직이는 용사였다.

 

 루체른 호수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