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박제된 폼페이 (안희두 이탈리아 여행기 6)

정흥교 | 기사입력 2020/01/28 [13:01]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박제된 폼페이 (안희두 이탈리아 여행기 6)

정흥교 | 입력 : 2020/01/28 [13:01]

 

 

 

[수원인터넷뉴스] 슬로 시티(Slow City)? 어디서 듣긴 들었지만 힐링하며 느리게 살자는 구호 정도로 기억했다. 현지 가이드는 피렌체에서 로마로 떠나며 165인근 지점에 오르비에토(Orvieto)를 지나는데, 그곳이 슬로시티의 발상지란다. 맛의 세계화와 표준화의 대명사인 Fast Food가 로마에 진출한 것은 1986년이었다. 그러나 오르비에토에서는 이에 맞서 Slow Food 운동을 주장하고 나섰고, Slow City 운동으로 번져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199910월 뜻을 함께하는 이탈리아의 다른 세 도시와 함께 치타슬로(Cittaslow)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절벽 위의 중세도시 오르비에토(인터넷 자료)


절벽 위의 중세도시 오르비에토의 주민은 2만여 명인데, 우선 차량의 통행을 금지하고 푸니콜라레(Funicolare)라고 부르는 산악전용열차를 타고 다니게 했다. 공해 없는 이곳에서 생산한 음식을 먹고, 지역의 문화를 공유하며 자유로운 르네상풍 도시를 지향하며 느림의 삶을 추구했다. 그 결과 아름다운 언덕 위에 중세도시로 소문나며 1년에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2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가 3박을 머무르는 호텔 지역은 로마에서 남동쪽으로 66km 떨어진 프로시노네 현의 산 중턱에 있는 작은 마을 피우지(Fiuggi)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승인된 슬로시티다. 193대 교황 보니파시오 8(1235~ 1303)가 미네랄이 풍부한 이곳 광천수로 신병을 고친 후부터 유명해졌고, 미켈란젤로도 휴양했던 숲속 마을이란다.

 

 호텔 출입구에 게시된 호텔 주변 안내도

 

여행 6일차인 1111, 5시 모닝콜, 6시 식사, 630분에 폼페이로 출발했다. 휴먼시티로 왔어도 예외는 없단다. 어제 로마로 다가왔을 때 내리기 시작한 비는 다행히 이슬비로 그쳐가고 있었다.

    

 

 

폼페이까지는 호텔에서 2032시간 30분 정도 예상된단다. 폼페이 유적지가 9시부터 입장하니까 교통체증이 걸리지 않아도 빠듯한 시간이다. 오늘 일정은 폼페이로 이동하여 베수비오 화산재에 묻힌 비운의 고고학 도시 폼페이를 관광한다. 카프리섬 선택관광을 신청한 사람은 기차를 타고 소렌토로 이동한 다음 유람선을 이용하여 카프리섬으로 간다. 한 바퀴 둘러본 후 유람선으로 나폴리로 나와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온다.

 

 폼페이 유적지인 스카비(Scavi 발굴하다) 입구로 들어가는 문

 

폼페이(Pompei)는 선사시대의 용암에 의해 형성된 화산암 위에 BC 5세기경 건설되었다. 도시를 에워싼 성벽은 한 변이 약 2로서 8개의 출입문이 있었다고 한다. 79824일 베수비오산(Vesuvio Mt. 1,281m 활화산이며 산꼭대기에는 지름 500m, 깊이 250m의 화구가 있다.)의 화산 폭발로 헤르쿨라네움 및 스타비아이와 함께 매몰되었다. 폼페이는 화산재로 뒤덮였지만, 반대편 엘코르라에는 많은 용암이 흘러내려 약 400m나 쌓였다고 한다. 200여 년 발달했던 폼페이시는 당시 2만여 명이 살았는데, 시민들과 함께 순식간에 화산재에 매몰된 뒤 세상 사람들에게 잊힌 도시가 되었다.

    

 

 

1,500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다가 1592년 수로 공사 도중 발견되어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성벽은 대부분 무너졌고 많은 유물이 도굴되었다. 그보다 당시 프랑스 부르봉 왕조가 점령하던 시기라 발굴이라기보다는 약탈에 가까웠다고 한다. 제대로 된 발굴은 19세기가 되어서야 시작되었고, 폼페이의 80% 정도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발굴된 유적지는 다른 유적들과 달리 상당히 온전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가이드는 폼페이가 융성하던 때는 고구려(BC 58)와 백제(BC 18), 신라가 자리를 잡던 삼국시대 초기니까, 그때의 시선으로 유적지를 둘러보며 상상을 하란다.

 

 우측이 바다쪽에서 올라오는 길(Porta Marina)인데 돌로 포장되어 있고 위쪽에 올라가면 사람이 통행하는 문과 마차가 다니는 문이 분리되어 있다.


630분에 출발해 약간의 정체는 있었지만 쉬지 않고 달려와서 주차장에 내리니 9시가 조금 넘었다. 물론 우리보다 앞에 온 2팀은 한국관광팀이었다. 폼페이와 마주친 첫 느낌은 도시를 재건축 개발하려다 부도가 나 5~6년 방치된 재개발 단지 그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는 반듯하고 핸드볼 공 크기 정도의 다듬어진 돌이 박혀 있는 포장도로인데, 마차길이 패어있고, 인도와 차도가 오늘날 도로처럼 분리되어 있었다.  

 

 2천 년 전에 건설된 도로인데 제법 크고 넓은 돌로 다듬어 포장했고, 도로와 약간 높은 인도 사이에는 현대와 같은 하수구 시설도 만들었다. 얼마나 많은 마차가 다녔나 바퀴가 굴러가던 길은 돌이 닳아 패여 있었다.

 

 비너스 신전(Temple of Venus - Santuario di Venere)과 인근의 동상

 

 연못 건너에 있는 아폴로 신전은 BC 6세기경의 가장 오래된 건물로 중앙에 쌓아 올린 제단(첼라)이 있다. 신전에서는 화살을 쏘는 모습으로 서 있는 아폴로 신과 사냥의 여신 디아나를 모신단다.

 

 켄타우로스(Centaur)는 그리스 신화에서 상반신은 사람의 모습이고 하반신은 말인 상상의 수인(사람+동물)이라고 한다. 몸에서 말의 부분은 태양에 속하는 남성적인 힘을 나타낸다.

 

 좌측 기둥 세 개가 서 있는 곳이 바로 포로(Foro)인데 폼페이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정치, 경제 활동이 이루어졌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1,500년 박제된 채

시간도 멈추었다

재앙이

눈길을 사로잡아

관광객 쏟아지네

 

 2,000년 전에 건설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도시가 잘 정리되고 계획된 도시였다.

 

 길 가운데 있는 공동 상수도인데 현재도 이탈리아 전역에는 이런 상수도가 있단다.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 보세요.

 

 홍등가를 감추기 위한 계획된 곡선 골목길

 

 홍등가 골목의 집집마다 욕조와 침대는 물론 프레스코화로 그린 춘화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당시의 성 풍속을 엿볼 수 있다. 실제 벽화들은 나폴리 박물관에 있다. 몇 개의 벽화는 남아 있는데, 사창가 거리에 있던 집에 있는 19금 벽화들이다.

 

 홍등가 춘화

 

내용이 많아 <이탈리아 여행기 7>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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