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손학규를 떠나 보내며

민주-빈민-노동-인권운동가-교수-학자-정치인에서 시민으로

강기성 기자 | 기사입력 2014/08/01 [01:36]

[기자수첩] 손학규를 떠나 보내며

민주-빈민-노동-인권운동가-교수-학자-정치인에서 시민으로

강기성 기자 | 입력 : 2014/08/01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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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인터넷뉴스2014년 상반기 재.보선 수원병 선거에서 낙선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73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정계에서 은퇴 선언을 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삶은 역정이라고 표현이 안 될 정도로 파란만장했다.

 

손학규는 19471122일 경기도 시흥군 동면(,서울시 금천구)에서 학자 집안의 10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1950년 선친을 일찍 여의고 홀 어머니 아래에서 학교생활을 마치고

1962년 경기고등학교 3학년 시절 한,일 협정의 반대하여 대학생들과 투쟁에 나서고 1965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한 손학규는 김근태, 조광래 와 함께 서울대 삼총사를 불리며 본격적으로 독재타도를 외치며 민주화 운동에 동참 하였으며, 박정희 독재 정권의 눈을 피해서 도망을 다니 던 중 빈민,인권,노동운동의 눈에 뜨게 되었고,1972년 군 전역 후 황석영등을 만나서 본격적으로 인권,빈민,노동운동에 하다가 1979년 당국에 수배 되었던 손학규는 김해 보안대로 잡혀가서 모진 고문으로 생명을 잃을뻔 했으나 1979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한 후에야 가까스로 나올 수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로 민주화가 될 것이라 확신했던 손학규는 세계선교협회(WCC)의 장학금을 받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했다.

 

귀국 후에 손학규는 1988년부터 인하대,서강대 교수직을 역임하면서 학자와 교수의 삶을 살다가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경기도 광명시의 재.보선에서 당선해서 2000년 까지 경기,광명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하였고 국회의원 신분시절 199611월 당시에는 최연소의 나이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고 그 경력으로 2002년 민선 3기 경기도지사에 당선 되어 행정가 로도 많은 역량을 보여주었다.

 

2007년 손학규는 당시 한나라당의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후 대통합 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합당을 주도 하여 민주당 대표를 역임하면서 200817대 총선을 전두지휘 했지만 당시 민주당은 전체 299석 중 81석을 얻는데 그쳐 대표직에서 사임하려 했으나 주위에 반대에 부딪혀 대표를 사임을 보류했다.

 

손학규는 2011년 상반기 재.보선에서 경기 성남 분당을에 출마하여 당시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를 이기고 화려하게 부활 하는 듯 했으나 2012년 당내 대선 경선에서 문재인 의원(부산 사상)에게 패배한 후 칩거에 들어갔다가 다시 한번 정계의 복귀의 꿈을 꾸면서 2014년 상반기 재,보선에서 수원병에 출마 했으나 정치신인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수원병)에게 패배 한 후 731일 뜨거운 햇빛이 얼굴을 비치는 날 기자회견을 통해 정계에서 재야에서 은퇴를 선언을 하고 한사람의 시민으로 돌아왔다.

 

손학규의 삶이 지금 기자의 글 몇 줄로 정리 되지는 절대 않겠지만 그가 꿈 대한민국의 저녁이 있는 삶은 언제인가는 실현 될 것이라고 위로 하고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알고 있다 손학규가 적어도 민주화 운동과 인권,빈민,노동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지키려 했다는 것을 노동신장과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손학규는 제자들을 양성해서 대한민국의 정치신장과 국력을 확장 하려 노력했고 그의 정치적 실험이 무능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우리나라 국민들은 기억할 것이고 손학규를 회상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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