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시인 안희두 시조로 수학사를 노래하다 8 오일러

정흥교 기자 | 기사입력 2017/10/16 [14:34]

수학 시인 안희두 시조로 수학사를 노래하다 8 오일러

정흥교 기자 | 입력 : 2017/10/1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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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인터넷뉴스] 1987년 무한대(), 시그마(), 집합, 명제, 조건문, 제곱근풀이, 인수정리, 통분 등 수학용어를 시 제목으로 사용한 시집 뫼비우스의 띠를 드립니다를 출판해 화제를 모았던 안희두 시인이 이번에는 13명 수학자들의 삶을 시조로 노래한 ! 뚫렸다 참 아름다워요를 출판했다.

 

Q : 수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A : MIT대학 기념품 가게에서 구입한 T셔츠에 글귀로 대신할게요.

 

Math is hard.

So is life.

Get over it.

 

 

수학은 어렵다. 인생도 그렇다. 극복해보자.’라는 내용이죠. 모든 스포츠가 힘들고 정상에 오르기 힘들지만, 그 중에 수학과 딱 어울리는 게 '스포츠클라이밍' 같아요. 거대한 인공암벽을 맨손으로, 까마득한 절벽 꼭대기를 향해 한 발 한 발 오르면서 다시 힘을 모으고 무거운 몸을 끌어 올리는 거죠. 거대한 중력을 거스르며 성취감을 느끼는 운동이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증명되어 나아가는 과정과 똑같은 것 같아서 구입했어요.

 

MIT에서 찍은 또 다른 사진 보실래요?

 

 

Q : MIT를 상징하는 조각상 앞에서 찍으셨네요. 조각상 제목이 'Mens et Manus'인데, 숫자와 이공계와 관련 기호로 구성되어 있지요. MIT의 교훈이 바로 'Mens et Manus(Mind and Hand, 마음과 손)'인데, 모든 지식이 실제 생활에 적용 가능할 때만 그 지식이 참된 의미를 갖는다는 뜻이죠.

 

A : 티셔츠에는  이라 쓰여 있지요. 혹시 아세요? 

 

Q :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 나오는 오일러 공식이네요.

 

A : 가우스(1777 ~ 1855)이 식을 보자마자, 그럼 당연하지!’라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당신은 일류 수학자가 아니다.’라 했다고 해요.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의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1918 ~ 1988)"최고의 수학 공식" 이라 극찬했어요. 그리고 1988년에 "수학자들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공식"으로도 선정되었지요.

 

자연계의 상수 중 가장 중요한 다섯 개인 원주율 , 자연상수 , 허수단위 , 덧셈의 항등원 0, 곱셈의 항등원 1이 하나의 식에 모두 담겨져 있는데, 이들은 대수학, 해석학, 기하학에서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상수이고 , , 는 오일러가 처음 쓰기 시작한 기호이기도 해요.

   

Q : 오일러의 출생부터 이야기를 해주시죠?

 

 

A : . 레온하르트 오일러는 1707415일 스위스의 바젤에서 태어났으니까 올해로 탄생 310년 이예요.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였고, 어머니도 목사의 딸이었으니 당연히 장남을 목사로 키우고 싶었겠지요. 그러나 오일러의 아버지는 당대 최고의 수학자였던 요한 베르누이(1667 ~ 1748)와 친분이 있었고, 당시에 오일러의 놀라운 수학적 재능을 알아본 요한 베르누이는 토요일 오후마다 오일러에게 개인 교습을 했다고 합니다. 13세에 바젤 대학교에 입학했고, 16세에 데카르트와 뉴턴의 철학을 비교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으며, 19(1726)에는 음향의 전파를 다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네요.

 

20세인 1727년 러시아로 옮겨 상트페테르부르크 과학학교 부교수가 되었고, 26세인 1733년에 다니엘 베르누이의 뒤를 이어, 과학원에서 최고 수학자의 자리인 수학과장이 되었어요. 그리고 그해 초에는 아카데미 김나지움 출신의 스위스 출신 화가의 딸인 카타리나 젤과 결혼하여 13명의 자식을 두었으나 5명만이 성년으로 자라났다고 해요. 오일러는 애들과 놀면서도 몇몇의 중요한 발견을 했다고 전합니다.

 

 

34세인 1741년에 프리드리히 대왕의 초청을 받아들여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로 자리를 옮겼어요. 그러나 왕은 물론 대신들과의 불화로 25년 동안 베를린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고 해요. 그래도 베를린에 있는 동안 오일러는 미적분학을 완전히 독립된 학문으로 체계 있게 완성시켰지요. 오일러는 59세인 1766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되돌아가는데, 76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17년을 러시아에서 보냈어요 

 

Q : 시집에 보면 죽을 때도 나는 죽는다(I die)”고 한 마디 남기며 세상을 떠났다면서요?

 

A : . 오일러는 1783918일 오전에 팽창하는 풍선의 속도를 계산하고 있었으며 오후에는 동료와 함께 1781년 새로 발견된 천왕성의 궤도에 관해서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하면서 어린 손자들과 놀아주다 뇌출혈로 쓰러지며 나는 죽는다.”고 말했고, 몇 시간 후 죽었다고 합니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러시아에서 32, 독일에서 25년 살다가 76세에 세상을 떠났네요.

   

Q : 오일러는 너무 연구를 열심히 해서 두 눈을 모두 잃은 봉사였지요?

 

A : 천문학상의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 다른 수학자들이 몇 달씩 걸려 푸는 문제를 오일러는 독특한 방법으로 사흘만에 풀어서 주위를 놀라게 하였는데, 28세인 1735년 러시아가 지도를 만드는데 필요한 수학적 부탁을 받고, 그 일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오른쪽 눈을 실명하였어요.

 

그는 오른쪽 눈을 잃은 후에도 하루 20시간 이상을 연구에 매달리며 몸을 혹사시키는 버릇이 남아있었어요. 59세이던 1766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다시 돌아왔는데, 백내장으로 남은 눈마저 못 보게 되어 17년 동안 맹인으로 지내야 했지요.

 

 

오일러의 ‘e-Day(27)’는 고등과학원이 오일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기념일이다. 

 

Q : 양쪽 눈을 모두 실명한 채 봉사로 지낸 17년 동안 저술한 논문이 더 많았다면서요?

 

A : 봉사가 되었어도 오일러는 뛰어난 기억력과 암산으로 하루에도 십여 쪽씩 새롭고 독특한 논문을 조수에게 대필시키며 쉬지 않고 쏟아냈다고 하죠. 봉사가 된지 5년이 되던 해인 1771, 집에 불이나 많은 원고들이 불에 타버렸고, 오일러도 불속에서 가까스로 구출되어 목숨을 구했는데, 화마 속에 남은 논문이 이만여 페이지라고 해요.

 

프랑스의 수학자이며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프랑소와 아라고(1786~1853)비유할 필요도 없고, 과장할 필요도 없이 오일러는 해석학의 화신이다. 사람들이 호흡하듯이, 독수리가 공중을 날듯이, 오일러는 특별히 힘들이지 않고 계산을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수학자이고 정치가였던 니콜라 드 콩도르세(1743 ~ 1794)“18세기의 뛰어난 수학자들은 모두 오일러의 제자이다. 그의 연구 결과를 공부하지 않은 수학자는 없으며, 그로부터 공식과 방법을 얻지 않은 수학자는 없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때 그의 천재성을 빌리지 않은 사람은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Q : 중학교 1학년에 나오는 한붓그리기도 오일러에서 시작되었지요?

 

A : 한붓그리기가 언제부터 교과서에 나오기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저는 초등학교 4~5 학년때 퀴즈로 처음 접했던 것 같아요. 연필로 그리고 지우개로 지우고 그렇게 고민하다가 나중에 답을 알고 보니 불가능이에요. 그 때 허탈감이 엄청 컸던 것 같아요.

 

 

위에 그림(인터넷 자료)1735년경 오일러 시절 쾨니히스베르크(지금은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의 지도이고, 프레겔 강과 일곱 다리는 색으로 구분했어요. ‘7개의 다리를 반드시 한 번씩 모두 건널 순 없을까?’ 누가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사람들 사이에 문제는 소문으로 퍼져나갔고, 일삼아 걸어보고 걸어봐도 해결되지 않자 당대 최고의 수학자 오일러에게 물어보기로 했지요.

  

 

오일러는 별로 고민하지도 않고 쉽게 대답해 주었어요. "이 다리들을 한 번씩 차례대로 건넌다는 것은 홀수점이 4개라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한 후, 위의 그림을 아래그림과 같이 바꾸고 선과 선이 만나 생긴 점에서 선의 개수가 짝수냐 홀수냐 따지더니, 짝수점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 출발해도 모든 곳을 한 번씩 지나 출발점으로 돌아오고(1), 홀수점이 두 개면 반드시 홀수점에서 출발하면 모든 곳을 한 번씩 지나 다른 홀수점에서 끝나고(2), 홀수점이 둘을 넘으면 아무리 용을 써도 불능이다.(3)”라고 자세히 증명했다고 해요. 이것은 오늘 날에는 "한붓그리기"와 같은 문제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위상기하학이라는 분야의 태동을 알리는 문제가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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