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두물림’, 신령의 여인이 되는 의식

작두를 타고 울음을, 왜일까?

하주성 | 기사입력 2012/04/10 [19:38]

‘작두물림’, 신령의 여인이 되는 의식

작두를 타고 울음을, 왜일까?

하주성 | 입력 : 2012/04/10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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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소 소리가 골목 안을 찢어놓게 울린다. 징과 바라가 그 소리에 더해진다. 빠른 박자로 두드려대는 소리에, 사람들이 골목 안으로 모여들었다. 대문 밖에서 까치발을 딛고 무슨 일인가하여 집안을 들여다본다. 4월 8일(일)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274-36호, 이정숙의 봄맞이 굿이 열리고 있다.

 

▲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이정숙의 집에서 맞이굿이 열리고 있다

 

맞이굿이란 신을 모시는 기자(祈子 : 흔히 무속인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들이 자신이 모시는 신과 수양부리(자신의 신자들)을 위해 일 년에 한 번, 혹은 삼 년에 한 번씩 커다란 잔치를 베푸는 것을 말한다. 봄에는 ‘꽃맞이 굿’. 가을에는 ‘단풍맞이 굿’이라고 부르는 이 맞이굿은 기자들에게는 가장 큰 굿이기도 하다.

 

굿은 마을의 축제였다.

 

부천 원미구 도당동에 소재한 재래시장인 강남시장 뒤편의 주택가 골목이다. 이층 옥상에서 아래로 내려 건 오색의 천이 바람이 흔들린다. 마당에는 상이 차려져 있다. ‘천궁맞이’가 시작되었다. 천궁맞이란 하늘에 굿을 하는 것을 알리고, 모든 신령들이 굿청으로 좌정을 하라는 ‘신맞이 의식’이다.

 

▲ 골목길도 대문 안도 모두 축제를 하는 장소로 변했다

 

▲ 고성주와 신손녀가 창부를 놀고 있다

 

이 날의 당주 이정숙이 불사제석의 신복을 걸치고 부채와 방울을 들고 거성을 한다. 좁은 집안을 감안해 골목길에도 마을 주민들을 위한 상이 차려졌다. 과거 우리네 풍습에 어느 집에서 굿이 있다고 하면, 그 날은 온 마을의 잔칫날이었다. 누구나 굿을 하는 집으로 가서 먹을 것을 나누고, 굿판에 함께 동참을 할 수가 있었다. 아이들도 어른도 모두가 참여하는 마을 전체의 축제였던 것이다.

 

인간의 서열보다 진한 신의 서열

 

굿판에서 사람들은 굿을 하는 무녀들의 신탁이라는 ‘공수’에 울고 웃고를 반복한다. 조상거리라도 할 냥이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다 알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날 이정숙의 맞이굿에서는 특별한 것이 있다고 하여 찾아갔다. 기자들은 내림굿을 해준 사람들을 ‘신의 부모’리고 하고, 내림을 받은 사람들을 ‘신의 자식’이라고 한다.

 

▲ 작두물림을 해주기 전에 작두칼을 갖고 어르고 있다

 

▲ 작두물림

 

이 신의 부모나 신의 자식은 인간세상의 부모자식과는 또 다른, 신으로 인한 서열이 정해지는 것이다, 나이와는 전혀 관계없이 부모와 자식이 이루어진다. 이정숙은 수원 팔달구 지동 거주 고성주의 ‘신딸’이다. 이날 이정숙은 자신의 맞이굿을 하면서 고성주에게 ‘작두물림’이라는 의식을 함께 거행했다.

 

무당들은 작두를 탄다. 그러나 아무나 작두를 타는 것은 아니다. 작두별상 등 작두신령이 모셔져야 작두를 탄다. 이런 작두를 타는 형태는 내림을 주관한 신의 부모가 작두를 탈 경우 ‘작두물림’이라는 절차를 통해 ‘신의 자식’에게 대물림을 하는 것이다. 하기에 이 작두물림을 하는 의식은 상당히 성스러운 행위라고 표현을 할 수 있다.

 

▲ 작두물림

 

 

대물림을 해야 하는 작두신명

 

“저는 신어머니인 최씨어머니에게서 작두물림을 받았습니다. 제 신어머니는 신딸 5명에 신아들 저 하나가 있었는데, 누나들은 아무도 작두물림을 받지 못했죠. 저 하나만 작두물림을 받았어요. 제가 내림을 받고 난 뒤 한 2년 정도 있다가 작두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받기가 두려웠다고 한다. 당시는 마을에서 작두를 타는 만신이 왔다고 하면, 인근마을 사람들까지 모여들고는 했다. 그만큼 작두를 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그것도 작두물림을 한 작두만신이라야, 무당으로서의 자질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 신아버지에게서 작두를 받아 놀리는 이정숙

 

▲ 서슬이 시퍼렇게 갈린 작두위에 올라섰다

 

“요즈음처럼 작두를 그냥 내림을 받았다고 타는 것이 아닙니다. 작두는 꼭 신의 부모에게서 작두내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올바른 신명이 신의 자식에게 전해지는 것이죠. 우리 신딸들도 작두를 모셔놓고 있고, 그동안 탄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작두물림을 하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한 신명 줄을 가진 신의 자식이 되는 것이죠.”

 

우리네들이야 이런 영적인 것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찬찬히 설명을 듣다가 보니, 그 말이 맞을 것 같다. 옛 말에는 ‘영험은 신령이 주나, 재주는 배워야 한다.’고 했다. 신내림을 받으면 영험은 신령이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굿을 하고 굿거리 재차를 익히고, 음식을 만들고 하는 등, 이런 모든 굿에 관한 것은 신의 부모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저는(이정숙) 아버님(고성주)에게서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혼이 나면서 배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버님의 신의 자식이라고 이야기들을 하지만,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작두물림을 받으므로 해서, 이제야 비로소 이버님의 신딸이 되었다는 것을요.”

 

▲ 박현주에게 작두를 넘겨주는 신아버지 고성주

 

수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하나를 제대로 배우고 익혔다고 한다. 잘못하면 눈물이 날 장도로 꾸지람을 하고, 그런가하면 포용을 하는 마음이 너무 커, 오히려 누가 될 것만 같았다고 한다.

 

“천년만년 억수같이 불려주마”

 

고성주의 신딸들은 작두물림을 받던 날 당의를 입었다. 그것은 고성주가 모시고 있는 작두별상이 남별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신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다. 먼저 고성주가 작두를 갖고 논다. 그리고 작두를 신딸인 이정숙에게 넘겨주자, 작두를 갖고 마당에 마련한 작두를 탈 곳으로 나갔다.

 

작두를 잘 못 타다가 다친 사람들의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을 수가 있다. 부정이 타 발을 잘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위험한 작두 위에 오를 수 있어야, 영험한 만신으로 소문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작두공수’가 제일이라고 한다. 즉 신탁인 공수 중에는, 작두위에서 주는 공수가 제일 영험하다는 것이다.

 

▲ 단골들에게 작두공수를 내리는 이정숙

 

작두 위에 오른 이정숙이 오방신장기를 받아들고 단골들에게 공수를 준다. 그리고 작두공수를 마친 후 작두위에서 내려섰다. 다음 날인 9일 화성시 매송면 송라리에 소재한 쌍룡사 굿당. 이곳에서는 역시 고성주의 신딸인 박현주에게 ‘작두물림’이 있었다. 올 봄 맞이굿에서 두 명의 신딸에게 고성주가 작두물림 의식을 행한 것이다.

 

“이제는 이 아이들이 제 신명을 따라 작두를 탈 때가 되었죠. 대개 작두물림은 맞이굿에서 전해지는 것이 정상적인 물림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 두 명의 신딸들이 비로소 제 신명을 이어받은 것이죠. 이런 의식은 저희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의식입니다”

 

박현주가 작두 위에 올라섰다. 순간 일갈을 한다.

 

“천년만년 억수같이 불려주마”

 

그리고 오열을 한다, 그 눈물의 의미는 아무도 모른다. 작두를 갖고 노는 모습을 보면서 신도들은 눈물을 흘린다. 작두는 왜 눈물을 흘리게 만들까? 누가 그 서슬이 시퍼런 작두 위에 올라서기를 좋아할까? 어찌 보면 신령의 사람들이라는 징표치고는 너무나 가혹한 듯도 하다. 그런 작두물림을 받았으니 어찌 슬픔이 밀려오지 않을까. 이제는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신령의 여인이 된 것이다.

 

“아버님의 손을 잡는 순간 무엇인가 뜨거운 기운이 저에게로 전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머리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아, 나는 이제 신령님에게 시집을 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바람이 불지를 않았으면 작두 위에서 내려오고 싶지가 않았어요.”

 

부천 도당동에 거주하는 고성주의 큰 신딸인 이정숙의 말이다, 수원시 팔달구 교동에 거주하는 작은 신딸이라는 박현주는

 

▲ 작두를 타고 공수를 주는 박현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아침까지만 해도 ‘내가 작두를 어떻게 타지’ 하면서 걱정을 했는데, 아버지가 손을 잡고 작두를 넘겨준 후에는 그런 걱정이 싹 달아났어요. 얼른 작두 위로 올라가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를 않았다고 해야 할까요?“

 

이틀 동안 두 명의 신딸들에게 작두물림을 해준 고성주는 이렇게 말한다.

 

“작무물림을 핼 때는 제 속은 숯검뎅이가 다 됩니다. 작두 위에 제대로 오르기는 할까라는 걱정부터, 과연 잘 불리는 기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죠. 작두날을 밟고 서는 것만 보아도 잘 불릴 것인가를 알 수 있으니까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 이틀 동안 두 명의 여인이 작두신령의 아내가 되었다. 그 작두신령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가 않다. 작두물림이라는 의식을 통해 같은 신명을 가진 무한한 힘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이렇게 신의 부모와 신의 자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고맙다고 큰절을 하는 신딸들. 아마도 고성주의 마음은 시집을 보내는 부모의 마음같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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