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로 걷다 興에 취해 넘는 문경새재 1
안희두, 숙지중학교장, 수원문인협회장

정흥교 기자 | 기사입력 2014/11/03 [14:37]

詩로 걷다 興에 취해 넘는 문경새재 1
안희두, 숙지중학교장, 수원문인협회장

정흥교 기자 | 입력 : 2014/11/0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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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조령 마루 걸어보면 영이련만

새재를 넘어가도 쉬는 새 하나 없다

이화령 이보다 낮아도 높은 줄 모르겠소 

 

수원인터넷뉴스조령산(1026m)과 갈미봉(770m)이 맞닿는 안부에 위치한 이화령은 해발 548m이다. 지금은 터널이 뚫려 일부러 오르지 않으면 구경도 못한다. 예전에 겨울철 이 길을 버스로 넘다보면 섬뜩했다. 봄에는 돌이 무더기로 굴러내려 올 때도 있었고, 쌓인 눈이 얼었다 녹으며 미끄럼 타고 쏟아질 때도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 고향이 연풍이기에, 문경새재 3개의 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이화령을 지나갈 때마다 문경새재를 떠올렸다. 그럼에도 시간이 바빠서, 아니다. 용기가 없었다. 차로도 이화령을 넘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홀로 해발 642m100m나 더 높은 문경새재의 험한 길로 여행을 하면 얼마나 무서울까 겁이 나서 마음속으로만 넘어갔다.

 

지난 여름, 갑자기 문경새재를 가족과 함께 넘고 싶었다. 이런저런 일로 미루다 아내와 단둘이 넘게 되었다. 고민은 연풍에서 시작하느냐, 문경에서 시작하느냐 의미는 사뭇 다르다. 서울로 향할 때는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거나 왕의 부름을 받아 가는 길이다. 그러나 문경으로 향하는 길은 낙향이나 귀양 가는 길, 물론 금의환향도 있겠다. 쉽게 돌아오기 위해 문경에서 출발하기로 정했다. 옛날에 聞慶(문경)’은 글자 뜻 그대로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게 된다는 믿음을 줬기에, 호남 선비들도 이곳을 통해 에둘러 한양에 가지 않았던가.

 

동탄에서 630분경 출발해 두 시간 만에 문경새재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늘은 문경에서 새재를 선비답게 넓은 길로 넘어 괴산의 고사리주차장까지 갔다가 이른 점심을 먹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옛길로 인생을 음미하며 문경으로 돌아오기로 하였다

.

선비상 앞에 잠시 머물며 옷깃을 여몄다. 마치 부처님을 대하듯 잠시 명상에 잠겼다.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니,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한복을 입고 괴나리봇짐에 뒷짐을 지고 넘어가는 축제도 좋을 것 같다. 이 축제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거짓말처럼 주흘산 산신령님 효험으로 합격률이 높다고 말을 흘리다보면 멋진 전설도 만들어지겠다. 수능을 앞두곤 전국 학부모들이 몰려들고…….

 

옛길박물관은 다음으로 기약하고 서둘렀다. 좌측 냇가에 새롭게 조성된 생태공원도 어린이나 걷기 힘든 분들에게 새로운 명소가 될 것 같다. 1관문 주흘관이다. 역사극에 많이 등장하는 곳이다. 임진왜란 이후 3개의 문, 1관문인 주흘관, 2관문인 조곡관, 3관문인 조령관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물론 조금 더 가면 오픈세트장도 있다.

   

문경새재 흙길은 보물 중에 기적이다

너도나도 맨발로 머리까지 상쾌하다

족탕에 발을 담그니 감춘 악동 절로 난다

 

주차장부터 맨발로 올라와 새재를 넘어도 좋다. 5년전 새재를 넘어 문경쪽으로 내려가다 누군가 양말을 벗기 시작해 이십여 명이 맨발로 걸었다. 오픈세트장 근처 마련된 족탕이 있어 발을 담그며 읊조렸던 시조다. 8월말 처음으로 문경새재 맨발페스티벌이 시작되었다니 번창하길 기원한다. 다만 대전의 계족산 맨발축제를 카피하지 않기를 바란다.

 

  

길손을 노려보며 침 넘기는 악어를

참깨 들깨 쥐어짜던 지름틀 바위란다

한바탕 널부러지게 웃으니 돋던 소름 녹았다

 

 

예전에 참깨나 들깨, 콩 등의 기름을 짤 때 사용하던 도구인데, 경상도 사투리로 지름틀이라 한다. 이 바위는 기름틀의 누름틀처럼 생겼다하여 지름틀 바우라 한다. 나는 그보다 길손을 노려보는 산적 악어를 떠올리며 한바탕 웃었다

 

 

 

임무가 막중했나 색 바랜 교귀정에

넘어질듯 감미롭게 잡아끄는 소나무여

흐르는 세월을 잡아두고 품속에 취하련다

 

새로 부임하는 경상감사가 전임감사로부터 업무를 인수인계 하던 교귀정이다. 수원에는 만석공원에 교귀정이 있다. 문경새재 교귀정엔 소나무 자태가 가슴을 녹인다. 세월에 취한 만큼 교귀정 또한 세월을 덧입히려 거무틱틱하다. 수백 년은 된 것 같다.

 

교귀정은 성종초인 1470년 경 건립되었는데, 1896년 의병전쟁으로 소실되었다. 1996년 복원하였는데, 수백 년 흐른 것 같다. 사라진 문화재를 복원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를 말없이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한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엔 경상감사로 주인공이 되리라 꿈을 품어본다.

 

계곡의 물소리와 새소리가 넘치던 곳

나그네 시름까지 날려주는 조곡폭포

인공도 세월이 쌓이면 그 또한 자연이리

 

조곡폭포는 2005년경 문경시에서 만든 200m 3단 폭포로, 비록 인공이긴 하나 시원한 물줄기가 하얀 실뿌리처럼 갈라져 바위에 나뒹구는 모습을 바라보면 시름까지 날아간다. 조곡폭포를 만든 시점을 알아보려 인터넷을 검색하니 인공이란 자체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래, 인공도 세월의 흔적이 쌓이면 역사가 되고, 전설이 되리라.

 

   

수천만 년 숨어살다 환속한 새색시여

볼을 타고 흐른 눈물 옷고름이 폭포구나

사나흘 바위굴에 빠져 품어볼까 조령산을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철 색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단풍으로 화장을 하고 맨발로 달려 나올까, 아니면 말라붙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수척한 몰골일까? 안내판조차 을씨년스런 겨울이 아닌가.

 

색시폭포는 20061, 산악인들의 겨울철 입소문으로 감춰졌던 비경이 시민공모로 색시폭포라 이름표를 달고 당당히 나섰지만, 평소엔 폭포라는 느낌조차 어려운 모양이다. 아내에게는 쉬고 있어라 넌지시 배려하고, 10여 년 전 추억을 되살리고파 홀로 뛰어갔다 오고 싶지만 곁눈질로 날벼락이 떨어질까 무서워 소리 없이 그냥 지나쳤다.

 

천신만고 치성 드려 얻은 자식 고랑고랑

신령님 말씀 따라 돌담 헐어 쌓은 책바위

돌 하나 쌓지도 않고 장원급제 비는가

 

잠시 전설 따라 삼천리로 들어가자.

 

 

책보다는 건강을 위해 돌담을 헐어 옮겨다 쌓았으니, 그 땀이 내를 이루어 낙동강의 발원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이상적인 인재상으로 지덕체(智德體)를 꼽는다. 그러나 책바위의 교훈은 체덕지라 말한다. 우선 건강이 중요하고, 사람 됨됨이인 덕을 갖춘 후에 공부를 해도 늦지 않음을 깨우쳐 준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이다.

 

이제 새재를 넘으니 한양에 가 장원급제를 하고 문경으로 돌아올 땐 마패를 차고 돌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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